비교적 덜 알려진 E형간염으로 진료 받는 환자가 한국에서도 연간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유럽에서 돼지고기 햄·소시지를 매개로 한 E형간염이 급증하면서 정부가 국내 발생 규모를 파악한 결과다. 보건당국은 국내 E형간염의 감염경로 등 정확한 실태 조사와 관리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병원체자원은행에 보관된 E형간염 검체와 일선 의료기관 진료 환자 자료 등을 바탕으로 발생 규모와 중증도, 감염원 등을 역추적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간염의 종류는 A·B·C·D·E·G형 등 6종이다. A·B·C형 간염은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관리되고 있지만 D·E·G형은 빠져 있다. 정확한 환자 수와 감염경로가 의료신고 체계를 통해 집계되지 않는다. 관련 대책 또한 전무한 실정이다. 조은희 감염병관리과장은 “건강보험공단 진료 청구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한 결과 2014년 79명, 2015년 97명, 지난해에는 106명이 E형간염 진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실태 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E형간염의 위험도를 평가한 뒤 법정 감염병 지정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E형간염은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돼지 사슴 곰 등 육류 및 가공품을 덜 익혀 먹을 경우 감염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2000만명이 걸리고 약 4만4000명(2015년 기준)이 목숨을 잃는다. 치명률은 3.3% 정도다.
아시아 중남미 등 저개발국에선 오염된 식수가 주된 감염 경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육류나 가공식품을 통해 산발적으로 발생한다.
국내에선 시골에서 멧돼지를 생포해 담즙액을 마시거나 노루 고기를 날것으로 먹고 발병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도축장에서 익히지 않은 쇠고기를 섭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감염된 경우도 있다.
E형간염에 걸리면 15∼60일의 잠복기를 지나 피로 복통 식욕부진 황달 회색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건강한 성인은 1∼6주내 대부분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임신부나 간 질환자, 장기이식환자 등 면역력이 떨어진 이들은 위험할 수 있다. 임신 9개월 이상 임신부의 사망률은 20%나 된다. 신현필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극소수 환자는 간 기능 상실로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돼지나 야생동물 고기, 가공육류는 날것으로 먹지 말고 E형간염 유행지역 여행시엔 안전한 식수와 충분히 익힌 음식을 먹도록 주의해달라고 권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럽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가 포함된 모든 비가열 식육 가공품에 대해 E형 간염바이러스 검사를 벌이고 있다. 식약처는 “국산제품은 대부분 가열, 살균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면서 “E형간염은 70도 이상 가열하면 다 사멸해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형간염 年100여명 걸려… 육류 날것 섭취가 주 원인
입력 2017-08-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