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남쪽의 애쉬테드에 사는 샌드라 휴즈는 이번 여름 해외여행을 포기했다. 대신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멀지 않은 해안가인 보그너 레지스 지역 버틀린 리조트를 찾았다. “해외로 나갈 돈이 없었거든요.” 그녀가 털어놨다. 보그너 레지스의 하늘은 파랗다기보다 회색에 가까웠고, 해변엔 돌이 많았지만 조금도 후회는 없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대’의 영국인들이 여름에 뜨거운 태양을 찾아 스페인이나 터키 등지로 떠나는 대신 그간 가지 않았던 국내 해변 리조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브렉시트를 앞두고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해외여행 비용이 비싸진 탓이다. 사실 샌드라는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이었지만 국내 여행과 비교해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스페인에서 5박을 할 경우 3000파운드(약 430만원)가 들지만, 버틀린 리조트에선 800파운드(약 116만원)면 충분했다. FT는 “현재 영국의 불안정한 상황은 가정경제를 압박하고, 여기에 (해외 유명 관광지의) 테러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버틀린 리조트는 1930년대에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휴가를 제공할 목적으로 영국 내 여러 곳에 설립됐다. 전성기를 누리던 50∼60년대 버틀린 리조트는 휴가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유럽 내 항공권 가격이 저렴해지고, 투숙객 감소로 경영난이 겹치면서 긴 침체기를 겪었다. 현지 주민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오래된 시설이 지저분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덕분에 ‘추억의 버틀린 리조트’는 살아나고 있다. 수영장과 놀이기구 등 아이들이 놀 만한 시설이 있고, 집에서 멀지 않은 데다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영국인들이 국내 리조트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온 리사 오가드는 “요샌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 영국 안에 있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8월 500만명 수준이던 국내 여행객이 올해 700만명 가까이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버틀린 리조트의 더모트 킹 총괄매니저는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는 가정이 휴가를 보낼 만한 공간을 만들 것”이라며 “시간과 돈의 압박은 모든 가정이 앞으로 겪을 부담”이라고 말했다. 여덟 살 손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토니 마이어스(60)는 “퇴실하면서 내년 휴가 때 묵을 객실을 예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브렉시트 英’ 버틀린 리조트의 슬픈 부활
입력 2017-08-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