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기 전까지 삼성은 현재의 비상경영체제와 사업구도를 유지하면서 버티기에 돌입할 전망이다. 전문경영인 지휘 아래 계열사별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올스톱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7일 이 부회장 실형 선고 이후 삼성의 경영 방향에 대해 “아직은 그런 얘기를 할 단계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이 부회장이 지난 25일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삼성 주요 임직원들은 휴일에도 출근해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오너와 미래전략실, 전문경영인 세 축으로 성장했던 기업”이라며 “그중 오너와 미전실 두 축이 사라지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지난 2월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이 되고 미전실이 해체된 이후 삼성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경영체제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지난 7개월 임시로 가동됐던 체제가 앞으로는 상시체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의 경우 디지털솔루션부문장인 권오현 부회장과 소비자가전부문장 윤부근 사장, 인터넷·모바일부문장 신종균 사장 세 대표가 협업해 이끌어가게 됐다. 고동진 무선사업부 사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요새 권오현·윤부근·신종균 대표를 거의 매주 만나면서 토의한다”며 “(미전실 해체 이후) 주요 의사결정은 거기에서 다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진행 중인 사업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출소하기 전까지는 큰 그림을 그리며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 강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 대해 “그것은 매우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부회장이 구속수감 이후 무죄 선고 여지를 남겨두고 경영에 관여했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 구속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굵직한 협상을 진행하는 데 전문경영인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영권 간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20% 정도다. 반면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수가 장기적으로 부재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해외 투기 세력이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에 대해 묵시적으로 청탁을 했다고 판단한 재판 결과도 삼성의 미래에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는 승계 작업의 핵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한 법적 분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글=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두 축 와해된 삼성, 남은 한 축으로 ‘비상 경영’
입력 2017-08-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