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 수년 전부터 중국 정부가 고속성장의 대명사였던 자국 경제의 중속 성장기 진입이 이제 ‘새로운 정상 상태’가 되었다면서 강조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경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한·중 수교 25년, 공동 기념식조차 거행하지 못한 현실은 바로 양국이 신창타이를 찾아야 하는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1992년 8월 24일, 양국은 40여년간의 반목을 청산하고 정식 국교를 수립했다. 세계 외교의 기적으로 불리면서 양국이 양적 경제 교류에 도취된 사이 수교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한반도의 비핵화와 안정적인 평화 환경 구축’은 더 복잡하고 요원해졌다. 게다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라는 원인은 도외시된 채 사드 배치라는 부차적 문제로 양국이 갈등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북핵에 대한 인식 차이로 기존의 대화 기제조차 작동시키지 못하는 양국 관계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 상대방의 양보나 태도 변화만 기다리면서 갈등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진솔한 의견 교환을 통해 실리적인 한·중 관계의 신창타이를 정립할 질적 변화를 도모할 시기가 됐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은 물론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경고와 우려를 무시한 채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국을 대화 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문재인정부의 교류 제의를 일축하더니 26일에는 또 다시 미사일 도발과 ‘남반부 점령’ 훈련도 했다. 미국에 대한 ‘남한 인질론’에다가 한국에 대한 실질 위협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핵 고도화는 대북 제재를 둘러싸고 미·중과 한·중 간 갈등을 계속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에 북한은 여전히 전략적 자산이지만 한국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것도 현실이다. 미국은 중국의 대북 압박 부족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북 압박 강화에서 북핵 문제 악화 원인을 찾고 있고, 한국은 정권에 따라 대북 정책이 바뀐다. 이 구조에서 상호 책임 전가는 자연스럽게 북한에 계속 잘못된 메시지를 줄 뿐이다.
결국 북핵 문제의 악화는 그 잠재적 폭발성을 알면서도 전략적 이용에 분주했던 관련국들의 공동 책임이다. 북핵 문제는 이미 복합적인 다자 문제이기 때문에 한·중 합의로만 풀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양국이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시장경제 궤도에 안착한 경제 교류가 중국의 일방적 제재로 곤란을 겪는 것도 비정상적이거니와 민간 및 문화 교류까지 경색된 현실도 장기적으로 큰 문제다. 한국인들은 중국이 힘으로 굴복시키려 한다며 크게 실망하고 있다. 상대방의 민족감정을 자극해 생기는 감정적·문화적 상처는 치유가 더욱 어렵다. 중국 정부가 반드시 곱씹어야 할 문제다.
미래지향적 한·중 관계를 위해 우선 좁혀야 할 간극이 있다. 북핵과 사드는 별개 사안이라는 중국과 북핵 때문에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는 한국 입장이 과연 좁힐 수 없는 간극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동맹과 대(對)중국 견제성이 농후한 미·일동맹과의 차별성도 간과돼서는 안 된다. 또 북한의 핵 보유가 정권유지 차원이라는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중국 입장은 대한국 안보 위협을 간과하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확고한 비대칭 군사 우위를 확보한 북한의 향후 행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북한이 단순한 핵 보유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미국은 물론 중국도 그 예측 불가성의 범위 밖에 있지 않다.
92년 수교 이후 한·중 양국은 북한이라는 이질적 요소의 존재에도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다. 지금 갈등을 겪고 있다고 지난 25년의 성과가 매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한번 한반도 안정과 평화 유지, 양국 경제 발전, 동북아의 평화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자던 한·중 수교의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다. 사드 같은 변수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정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양국 관계가 좌초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강준영(한국외대 교수·중국정치경제학)
[한반도포커스-강준영] 신창타이 시대의 도래
입력 2017-08-27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