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 아이가 잘 자라 어른이 돼서 출세하기란 진정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전통 수묵화를 현대화해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제백석·1864∼1957·사진)의 한국 첫 개인전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현대적 미감의 거칠 것 없는 수묵의 세계에 취해 작품을 감상하다 한 귀퉁이서 그의 이 고백을 접하면 한 점 한 점이 다시 보인다. 거장으로서의 명성을 누리기까지 찢어질 듯 가난한 삶을 이겨내야 했던 아픔을 이처럼 덤덤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치바이스는 대중적 인기나 예술적 경지 모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는 중국 수묵화의 거장이다. 82세에 그린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전서사언련(篆書四言聯)’은 2011년 베이징의 한 경매에서 714억5000여만원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피카소를 제치고 중국 근현대 회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작가 치바이스.
그런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나무로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시서화각 4절을 익힌 대가가 됐다. 전시장에는 그가 하루 노동을 마치고 밤에 등불에 의지해 남에게 빌려와 매일 베끼면서 익혔다는 ‘개자원화보’도 나와 가슴을 찡하게 한다.
그가 서양미술의 역사를 새로 쓴 피카소에 비견되는 이유는 전통 중국화에 가져온 변혁에 있다. 우선 소재다. 그는 다른 화가들이 매난국죽(梅蘭菊竹)을 그릴 때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 눈을 돌려 ‘신문인화’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로 인해 배추 오이 나팔꽃 새우 게 같은 하잘 것 없는 동식물이 고매한 문인화의 주인공이 됐다.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놔두고 신기한 것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사진작괴(捨眞作怪·진짜를 버리고 괴기함을 그리는 것)”라며 통념에 맞섰다.
전통적 방법을 버린 파격적인 기법도 놀랍다. 과감한 생략과 ‘치바이스 컬러’라고 불리는 강렬한 원색의 대비, 시원한 발묵 기법, 장검을 휘두르는 듯 단숨에 죽죽 그어 내리는 직필 탓에 그의 회화를 보고 있으면 한여름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후련하다. 여기에 풍자와 해학이 곁들여져 보는 맛을 깊게 한다.
“붓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꽃과 새, 물고기와 벌레, 산과 물, 그리고 나무들이 마치 그의 손 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고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후학인 리커란(이가염·1907∼1989)의 헌사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으로’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는 한·중수교 25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중국 후난성박물관 소장 55점과 샹탄시치바이스기념관 소장 유품과 자료 133점 등이 나왔다. 전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서예, 전각까지 시서화각 ‘4절(絶)’의 실력을 갖춘 치바이스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전통양식에 따라 그렸던 20∼30대 시절 초기 작품부터 전시돼 예술 세계의 변천사도 일별할 수 있다. 사석원 최정화 등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치바이스를 오마주하며 내놓은 작품이 부족한 작품을 대신하려는 듯 ‘옥에 티’처럼 생뚱맞게 전시된 걸 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전시다. 10월 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중국의 피카소’ 치바이스 첫 한국 개인전
입력 2017-08-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