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방송 중인 KBS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는 남편 차규택(강석우 분)이 아내 오복녀(송옥숙 분)에게 ‘졸혼’을 선언하고 졸혼 예행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선 중년 연기자 백일섭이 결혼생활 40여년 만에 졸혼한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요즘 각종 방송이나 미디어를 통해 졸혼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도 뜨겁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졸혼을 검색하면 ‘졸혼 계약서’를 비롯해 ‘졸혼 시 유의사항’ ‘졸혼정립 10계명’ 등 관련뉴스만 3000개 가까이 뜬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은 이혼과는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법적인 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개념이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간한 ‘졸혼을 권함’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100세 시대’에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말다툼이나 간섭을 피해 서로 자유롭고 싶을 때가 있다. 황혼 이혼은 부담되고 잠깐 떨어져 숨 쉴 틈이라도 얻을 수 있는 졸혼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인데, 과연 부부들은 행복하게 졸혼할 수 있을까.
크리스천 부부 64% ‘졸혼 반대’
크리스천 기혼남녀 10명 중 6명은 졸혼이 이혼과 다를 바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혼인관계만 유지한다고 해서 모든 가정이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같은 결과는 국민일보와 하이패밀리가 공동 기획한 ‘졸혼에 대한 의식실태 조사’에서 드러났다. 지난달 7∼17일 전국 크리스천 기혼남녀 1041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자기기입식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졸혼을 ‘절대 하면 안 된다’(36.0%) ‘하면 안 된다’(28.1%)고 응답한 사람이 64.1%였다. 특히 결혼 5∼9년차(71.4%)는 20년차 이상(64.3%), 15∼19년차(63.5%) 부부들에 비해 졸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신혼을 보내고 자녀가 생기는 이때가 결혼생활의 황금기란 걸 알 수 있다.
크리스천이 졸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혼과 다를 바 없어서’(23.3%) ‘가정이 진짜 깨질 수 있어서’(22.5%) ‘둘이 하나 되라는 성경말씀에 위배되기 때문’(21.7%)이다. 크리스천의 결혼관은 비교적 건강했다.
그들의 속마음, ‘졸혼에 솔깃’
그러나 ‘졸혼을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47.4%가 생각해봤다고 했다. 생각한 적 없다는 응답은 41.4%였다.
크리스천들 역시 ‘혼자이고 싶을 때’(23.9%) ‘자주 싸우다 지칠 때’(23.6%) ‘존중받지 못할 때’(15.1%) ‘말이 통하지 않을 때’(11.6%) 졸혼을 생각했다. 부부간에 소통의 방법으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졸혼을 생각해봤다는 응답은 4.2%에 불과했다.
김향숙 하이패밀리 공동대표는 “크리스천들은 결혼에 대해 확고한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실생활로 들어가면 세상적 가치문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오히려 졸혼을 한 번쯤은 생각해봤다고 응답한 이들의 마음이 실제 모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졸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선 ‘배우자의 간섭을 피해 자유롭게 살 것 같아서’(22.9%) ‘서로에 대해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21.4%) ‘이혼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아서’(20.9%) 등으로 비슷하게 나왔다. 부부관계가 힘들어 졸혼에 솔깃했다는 속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리(Re)혼, 결혼을 다시 시작하자
오랜 결혼생활로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역할 과부하에 걸릴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부부생활에 피로감이 쌓이고 결국 ‘결혼탈진증상’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졸혼이란 탈출구도 생긴 것이다.
결혼생활도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낡고 오래된 집에 금이 가고 지붕에서 물이 새면 다시 깨끗하게 수리하듯 부부 사이도 재수선이 필요하다. 크리스천들은 졸혼이나 이혼을 ‘리(Re)혼’, 다시 시작하는 결혼생활로 바꿔야 한다. Re혼을 통해 신혼의 즐거움과 행복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경적 가치를 토대로 한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훌륭한 아내, 혹은 남편이 되도록 훈련하는 부부 역할 재교육이 아닌 각자의 역할을 벗어나 스스로를 회복시키고 부부간 갈등으로 망가진 마음을 치료하는 부부마음치유나 회복프로그램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결혼은 느낌표로 시작해 물음표를 거쳐 마침표에 이를 수 있고, 다시 느낌표를 회복할 수도 있다”며 “너무 쉽게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부부가 존중의 대화를 나누고, 취미를 함께하는 등 작은 실천을 약속한다면 고통의 물음표는 어느새 행복의 느낌표로 회복될 수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Re혼으로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
글=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졸혼 안돼” 리혼 하자
입력 2017-08-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