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담던 탱크에 서울의 문화 에너지 ‘한가득’

입력 2017-08-24 22:05
서울시 관계자가 24일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기자들에게 전시 공간 조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 1번 탱크엔 가솔린 300만ℓ가 들어있었습니다. 5개의 탱크 중 가장 위험했던 곳입니다.”

서울시 관계자가 유류 저장 탱크가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콘크리트 외벽이 사라진 자리에 윤곽선을 따라 유리벽이 세워졌고 그 너머로 매봉산의 암벽과 나무들이 보였다. 1번 탱크는 뉴욕 애플스토어를 닮은 유리돔 ‘T1’으로 변신했다. 석유를 저장하던 이 탱크는 앞으로 공연장, 전시장, 강연장 등으로 사용된다.

서울시는 1급 보안시설로 40년 가까이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던 마포구 상암동 ‘석유비축기지’를 재생한 ‘문화비축기지’를 다음달 1일 개장한다고 밝히고 24일 출입기자들에게 사전 공개했다.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건설돼 6907만ℓ의 가솔린, 디젤, 벙커씨유 등을 저장했던 5개의 탱크는 총 사업비 470억원을 들여 6개의 문화공간(T1∼T6)으로 거듭났다. 산업유산 재생을 통해 서울시내에 축구장 22개와 맞먹는 14만㎡ 규모의 새로운 문화공간이 조성된 것이다. 디젤유 2214만ℓ를 저장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2번 탱크는 외부 철재를 모두 걷어내 야외 공연장과 지하 공연장을 갖춘 T2로 만들어졌다. T3는 기존 탱크의 원형을 리모델링 없이 그대로 살려 건축투어와 공간투어를 위한 시설로 활용할 예정이다. T4 역시 탱크 내·외부를 거의 변형하지 않은 채 영상·음향 설비를 설치해 미디어전시 위주의 공간으로 이용한다. T5는 석유비축기지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전시관으로 활용한다. T6는 T1과 T2에서 나온 내외장재를 재활용해 만든 신축 건축물로 회의실과 카페, 강의실, 사무실 등을 갖춘 커뮤니티센터다. 문화비축기지 중앙에는 야외 문화마당이 조성됐다.

문화비축기지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부분 지열 등 친환경에너지로 충당한다. 운영은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가 힘을 합친 ‘협치위원회’가 맡는다. 설계와 자문, 운영까지 시민이 주도하는 최초의 공원 운영 모델이다. 임정희 협치위원장은 “민간 전문가가 제안한 콘텐츠에 행정체계를 맞춘 최초의 모델이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