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억 뇌물 혐의’ 유죄? 무죄?… 이재용 운명 가른다

입력 2017-08-25 05:00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법원 휘장 앞으로 24일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곳 417호 대법정에서 25일 오후 2시3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다. 곽경근 선임기자
25일 오후 2시30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사건을 맡아 심리에 착수한 지 178일 만이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사실상 오너인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6개월 가까이 재판을 받았다.

그의 부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2008년 7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의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1심 선고를 받았다. 당시 이 회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내려졌다. 이 부회장은 9년1개월 만에 부친이 섰던 법정에서 사법 판단을 받게 됐다.

혐의 하나라도 유죄면 실형 가능성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와 특경가법상 횡령,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죄 등 모두 5가지 혐의가 적용돼 있다. 선고 시작과 함께 재판장이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을 차례로 낭독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유죄 판단이 나온다면 실형 선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가장 쟁점으로 꼽히는 혐의는 뇌물공여죄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 정권 차원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정유라씨 승마 훈련비로 77억여원을,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여원을,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각각 지원·출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뇌물죄는 공무원이 돈을 받는 주체여야만 성립한다. 특검팀은 재단과 영재센터에 들어간 돈에 대해서는 ‘제3자 뇌물죄’로 기소했다. 돈을 받는 실질적 주체가 최씨라는 것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공무원(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관련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제3자(최씨)에게 돈을 줬다고 보고 이 법 조항을 의율(擬律)했다.

반면 특검은 정씨 승마 훈련비로 들어간 돈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공동 수수자라고 보고 ‘단순 뇌물죄’를 적용했다. 최씨 모녀에게 들어간 돈이지만 박 전 대통령도 뇌물 수수의 공범이라고 본 것이다. 특검은 “(공범 여부 등) 입증이 더 까다로운 혐의지만 수사로 드러난 사실 관계에 맞춰 기소했다”고 했다.

뇌물죄의 유무죄를 가르는 요소는 ‘부정 청탁’과 ‘대가성’ 여부다. 단순히 돈이 오간 것에 그치지 않고 뇌물 수수-공여자 간에 부정한 청탁과 대가 관계가 있어야 유죄로 본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은 아들 소유의 요트회사가 STX그룹에서 7억여원을 후원받았다는 제3자 뇌물 혐의로 지난 4월 유죄를 확정받았다. 돈은 아들 회사로 들어갔지만, 정 전 총장과 STX 사이에 ‘사업상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등의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이유였다. 진경준 전 검사장 역시 대한항공으로 하여금 처남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해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항소심까지 유죄 선고를 받았다.

朴 재판 영향은?

이 부회장 측은 “비선실세인 최씨의 영향력으로 어쩔 수 없이 돈을 내야했다”며 자신들은 협박의 피해자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세 차례 독대 상황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뇌물죄에 무죄 판단을 받으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뇌물 혐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뇌물공여죄가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상대방 측의 뇌물수수죄가 성립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긴 하지만, 기소 시점의 차이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선고 결과가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이 이 부회장 선고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지난 23일 이 부회장의 선고 공판을 생중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여론 등을 신경쓰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하겠다는 취지다. 특검과 삼성 측은 모두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어떤 결과가 나와도 대법원까지 가게 되는 만큼 담담하게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