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불명 계란 ‘친환경’ 둔갑… 식약처, 8개월간 깜깜

입력 2017-08-25 05:01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뉴시스

‘살충제 계란’ 파동 이전에도 정부의 계란 유통 관리는 부실 그 자체였다. 축산물 판매업 등록조차 하지 않은 불법 판매상이 출처가 불분명한 계란에 친환경 인증 농가 포장지를 덮어 팔아도 통제는 없었다. 8개월간 1600여만원어치 계란을 유통했지만 식품 안전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차단막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해 적발한 불법 계란 유통 사례가 대표적이다. 24일 의정부지법에 따르면 계란 판매상 신모(56)씨는 2015년 4∼11월 ‘무항생제 친환경란’ ‘유황특란’으로 허위 표기한 계란을 유통하다가 적발됐다. 신씨는 친환경 인증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모(61)씨로부터 ‘무항생제 친환경란, A농장’이라고 표시된 상표 포장지를 제공받았다. 포장지 안에는 신씨가 수집한 출처 불명의 계란이 담겼다. 신씨는 식당 등 식료품점에 계란을 팔아 461만6700원의 이득을 챙겼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씨는 ‘유황특란, A농장’이라는 상표 포장지를 제작 후 주씨의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인 양 판매하기도 했다. 출처 불명의 계란을 마치 유황성분이 들어간 사료를 먹인 닭이 낳은 것처럼 소비자를 속인 것이다. 가짜 유황특란 역시 식료품점을 통해 판매했다. 1212만1600원의 부당 이득이 신씨에게 돌아갔다.

신씨는 축산물 판매업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신씨는 허위 친환경 인증 농가 표시 계란 판매 외에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 이름으로도 계란을 판매했다. 기간은 2012년 12월∼2015년 10월까지다. 의정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신씨에게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공모 혐의를 받은 주씨는 700만원의 벌금형에 처했다.

법의 심판을 받긴 했지만 8개월간 유통된 계란은 이미 소비자가 섭취한 뒤였다. 신선식품의 특성 때문에 회수 폐기할 계란은 없었다. 식약처가 유통 단계에서 걸러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식약처는 살충제 계란 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부랴부랴 유통 중인 계란의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산란계 농가 조사와 합쳐 52곳의 부적합 농가를 적발했다. 이들 중 2곳은 식약처에서 관리하는 난각(계란 껍질) 코드조차 없었다. 식약처는 뒤늦게 생산부터 유통 단계까지 관리 가능한 ‘계란 이력제’를 도입한다고 나섰다. 하지만 계란과 같은 신선 식품 생산 및 유통 관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새로운 제도 도입보다 현행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