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스포츠] 꿈의 첫 승 향해… 10년째 던지는 이 사나이

입력 2017-08-25 05:02 수정 2017-08-25 13:48
한화 이글스 투수 강승현이 지난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 나와 힘껏 공을 던지고 있다. 올해로 프로무대 데뷔 10년째를 맞은 강승현은 아직 승리투수가 된 적이 없다. 강승현은 “가족과 나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인 1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뉴시스

“1승.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제가 1승을 한다면 가장 먼저 부모님께 당당하게 전화 드리고 싶습니다.”

다승 1위를 다투고 있는 KIA 타이거즈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는 승리를 밥 먹듯이 한다. 하지만 프로야구 투수 중에는 그 1승을 아직 하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도 있다. 한화 이글스 투수 강승현(32)도 그런 선수들 중 한 명이다. 2008년 프로에 데뷔한 뒤 올해로 10년째, 나이도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그의 통산 성적은 1홀드 1패.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강승현과 지난 15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아쉽게도 그날 강승현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짐을 싸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내 스스로 아쉬움이 많다. 기회를 줬는데 확실히 못 잡았다”고 했다.

강승현은 서울고와 단국대를 나왔다. 2007년 대학 4학년 때 동기인 KIA 타이거즈 나지완과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대학야구 춘계리그 대회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 놓았다. 우수투수상까지 받았다. 186㎝, 96㎏ 건장한 체구에 최고 시속 150㎞ 강속구를 던지는 유망주였다. 포크볼도 일품이었다. 그래서 이듬해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18순위로 롯데에 지명됐다. 계약금도 70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프로에선 이상하게 안됐다. 1군에 올라갈 때마다 족족 난타를 당했다. 멘털이 문제였다. 그래서 별의 별 수를 다 써봤다. 하루에 공 400개를 미친 듯이 던져봤다고 했다. 또 멘털 강화를 위해 롯데 2군 구장이 있는 경남 김해 상동 근처 산에 밤에 혼자 올라가 면벽 수행을 해 보기도 했다. 강승현은 “자다가도 꿈에 난타를 당하는 장면이 나와 자주 깼다. 그럴 때면 잊어버리기 위해 방에서 혼자 피칭연습을 밤새 했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강승현은 “이상하게 막상 마운드에 오르면 생각이 많아졌다. ‘이닝 수를 늘리자. 시합이 잘 풀릴 수 있게 던지자’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고 털어놨다. 경기에 나서기 전 동료와 코치들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있는 힘껏 공을 던지라’고 하고 본인도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정작 마운드에서는 그게 안됐다.

결국 강승현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롯데에서 방출됐다. 서른이 넘어 팀에서 방출되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이나 지인들도 힘겨워했다고 한다. 여자친구와도 그때 헤어졌다. 미래가 불확실해졌고, 자신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생겨 결국 만남을 끝냈다고 전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아버지는 현재 에어컨 설치·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다. 강승현은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내가 방출된 후 몸에 신경성 마비가 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로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도 크다고 했다. 강승현이 지금까지 받은 최고 연봉은 3년 전 3200만원이었다.

하지만 한화가 올해 그를 극적으로 신고선수로 영입했다. 2군도 아닌 육성군(3군)으로 내려갔다. 신고선수라 배번도 받을 수 없어 등에 ‘112’라는 큼지막한 숫자를 달았다. 일부 다른 팀 선수들이 “번호가 그게 뭐냐”고 놀려도 웃었다. 최저연봉 2700만원도 좋았다. 다시 돌아온 기회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육성군에서 눈에 띄어 2군으로 올라갔고, 결국 올해 6월 8일 정식 선수가 돼 1군 무대를 밟았다. ‘11’이라는 정식 배번도 받았다.

1군 등록 후 21경기에 나왔다. 강승현은 “1년에 던져봤자 3∼6이닝으로 끝났다. 그런데 올해 20이닝을 넘겼다”며 “경기에 자주 나오니 아버지의 병이 많이 나으셨다”고 웃음을 지었다. 인고의 시간을 많이 보내서인지 이제 멘털이 좀 강해졌다.

두 살 위인 동료 이동걸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2군에서 항상 가까이 붙어 자신을 살뜰히 챙겼다. 이동걸도 강승현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데뷔 11년차 때인 2015년 생애 첫 승을 따냈다. 이동걸은 “점수를 많이 주면 안 된다. 1군에 올라가면 신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면 안 된다. 10년차이지만 신인처럼 어느 상황에서도 미친 듯이 강하게 던져야 한다. 그래야 점점 업그레이드된다. 공이 좋으니 더 자신 있게 하라”고 조언했다.

강승현은 기회가 주어지고 마음도 잡으니 이제 야구가 좀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이날 2군으로 내려갔지만 기약 없는 통보가 아니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강승현이 잘 해줬다. 최근에는 조금 안 좋았고, 재정비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렸다”고 말했다. 김태균과 이성열도 자신에게 “조금만 더 준비 잘하고 있어라. 다음번에는 절대 내려가지 말라”는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강승현의 꿈은 소박하다. 바로 1승이다. 그는 “1승을 하면 내 스스로도 기쁘겠지만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승의 의미에 대해 물어봤다. 강승현은 “내 인생 경력에 승이 남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승을 따낸 선수라는 타이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강승현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수들에게 전했다. “야구를 할 수 있는 곳과 야구를 할 자신만 있으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하자. 모두 1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우리는 아직 보여줄 것이 많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