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지명에 野 ‘억지’, 한명숙 출소에 與 ‘오버’… 사법부 흔드는 정치권

입력 2017-08-24 05:03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운데)가 23일 경기도 의정부교도소를 만기출소하면서 지지자들로부터 노란 풍선을 받아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뉴시스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이 22일 오후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현규 기자
한명숙 前 총리 출소… “사법적폐 청산” 목소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만기출소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억울한 옥살이’ ‘정치보복’ ‘사법적폐 청산’ 목소리를 높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정부에서는 사법부마저 때로 정권에 순응했다. 중요한 사건에 있어 사법부 스스로 인권을 침해하는 ‘인권침해 공범’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사법적폐가 일어나지 않는 사법기풍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현 민주당 대변인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때 추모사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한 전 총리를 향한 정치보복이 시작됐다”며 “정치탄압을 기획하고, 검찰권을 남용하고, 정권에 부화뇌동한 관련자들은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의 주장은 야권은 물론 법조계의 비판을 받았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세력을 적폐로 몰아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전 총리의 판결문을 보면 유죄 판결의 근거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8월 20일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 혐의를 받는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을 확정 선고했다. 검찰 기소 5년 만에 내려진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었다. 13명의 대법관 중 8명은 건설업자 한만호씨가 건넸다는 9억원 전체를 유죄로 봤고, 5명은 3억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13명 대법관 전원이 한 전 총리가 최소한 3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 전 총리 동생이 2009년 2월 아파트 집주인에게 준 전세금 가운데 한씨가 발행한 1억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섞여 있었던 게 결정적 증거가 됐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 13명이 유죄로 판단한 걸 근거 없이 ‘잘못됐다’고 하는 건 사법부에 대한 모욕”이라며 “집권 여당이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판결과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근거 없는 비난은 사법부 신뢰에 영향을 많이 미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야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은 옳다 하고, 그와 배치되는 헌법기관의 결정은 부정한다면 누가 국가기관의 결정을 신뢰하고 존중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태도는)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자신들만 선(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자, 우리가 그토록 배격하고자 하는 구악 중의 구악”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여당에 국정조사를 제안했다.

최승욱 지호일 이종선 기자 applesu@kmib.co.kr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 지명 “사법정치화” 공세

자유한국당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에 대해 ‘사법의 정치화’ ‘사법부 장악 시도’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김 후보자 지명은 향후 계속될 국정농단 재판을 현 정부에 유리하게 이끌어가겠다는 정략적 의도가 깔린 ‘대법원 알박기’ 인사”라고 비판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청와대는 전대협 주사파들이 장악했고 모든 분야에서 나라가 급격히 좌편향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이며 판사 출신인 이주영 의원은 “김 후보자는 ‘법원 내의 하나회’로 여겨졌던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을 지낸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을 사법부 수장으로 지명했다는 것은 사법부를 특정조직 출신들로 줄 세우고 대다수 양심적인 판사들을 축출하는 ‘사법쿠데타’라고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주권시대를 부르짖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적폐조직에서 활동하던 판사를 대법원장에 지명한 것은 적폐를 옹호하는 것이자, 국민을 피지배자·핫바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바른정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면서 “우선 청문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법조계에선 김 후보자가 좌편향이라는 일부 야당의 비판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 후보자가 법관의 독립성을 강조해온 만큼 특정한 정치적·이념적 편향은 오히려 자리 잡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김 후보자는 판사들이 정치적 영향력 없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법관의 독립을 강조했고, 이는 그 자체가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될 경우 그가 재판장 역할을 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모습도 정치권이 우려하는 ‘알박기’와는 다를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가 과거의 대법원장들과 달리 9명의 대법관을 선배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법연수원 기수가 대법관들보다 높은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컸지만, 앞으로는 전례 없이 수평적인 전원합의체가 탄생해 자유로운 논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법관은 “새로운 전원합의체 구성은 법률문화 개선에도 일조할 환경”이라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선 “법관의 개인적 신념과 직업적 양심은 구분된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김 후보자가 사법행정권 차원에서 개혁적 성향을 보인 것은 맞지만 이미 마련된 법 체계에서 벗어나 대법원 판례들을 임의로 세울 수는 없다는 의미다.

글=하윤해 이경원 기자 justice@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