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힘 실리나

입력 2017-08-23 19:07 수정 2017-08-23 23:30

법원행정처 2인자인 김창보 차장이 23일 인천지법을 직접 방문한 것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사법부 수뇌부의 기류에 변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인천지법 오모 판사와 최한돈 부장판사가 각각 단식과 사표 제출 방식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그간 행정처는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면담 이튿날 김 차장이 이들 판사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사법부 내홍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김 차장은 오 판사 등에게 양 대법원장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의 설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판사는 지난 10일부터 13일간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양 대법원장에게 행정처 권한 남용 추가 조사와 인적쇄신 등을 요구해 왔다. 그는 이를 ‘금식 참회기도’라고 불렀다. 최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사법부의) 마지막 자정 노력을 다하겠다”며 사표를 냈다. “판사들의 성향·동향을 정리한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전국 3000여명 법관의 대표로 뽑힌 판사 98명은 지난 6월 1차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에서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해야 한다”는 안건을 80% 이상 찬성으로 의결했다.

행정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관회의 내 소위원회가 지난 8일 “해당 컴퓨터가 보관돼 있는지 여부만이라도 확인해 달라”고 문의했는데도 답하지 않았다. 양측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일선 판사들과 행정처의 관계도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어 취임하면 행정처의 대응은 더욱 전향적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22일 양 대법원장 면담 전 취재진에게 “(블랙리스트 논란은) 청문회에서 입장을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지난 3월 전국 법원장회의에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냈다. 같은 달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에서는 “법관 독립을 위해 외부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민철 이경원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