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모집이 3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건우(18)군은 고민이 깊어졌다. 유군은 중학교 때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어 소규모학급으로 운영되는 대안학교로 옮겼다. 이곳에서 역사에 흥미를 느꼈다. 방학 땐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경주에 가 해설사 역할을 하고, 직접 역사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 한국사만큼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만점이 나온다. 역사 교사의 꿈을 갖게 된 유군은 이런 활동 경력을 살리면 수시 전형에서 대학 관련학과에 지원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수시 모집을 준비해보니 현실은 달랐다. 대안학교를 나와 고졸 검정고시로 학력을 얻은 유군 같은 수험생에게는 아예 수시 지원 자격을 주지 않는 학교가 여럿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유군은 23일 “검정고시 출신은 지원 불가능한 대학을 빼고 내 성적에 맞는 곳을 추리니 몇 군데 남지 않더라”며 “한국교원대는 꼭 지원하고 싶었는데 못 쓰게 됐다”고 씁쓸해 했다.
수시전형은 크게 학생부전형(교과, 종합)과 논술, 실기로 나뉜다. 다문화가정자녀전형 등 소수자 대상 특별전형도 있다. 이 중 학생부전형의 경우 대다수 대학이 검정고시 출신자는 지원도 못하게 한다.
서울교대 등 전국 교대 10곳과 한국교원대에서는 소수자 대상 특별전형을 제외한 모든 수시전형에서 검정고시 출신의 지원을 불허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등 20곳에서도 예체능 등 일부 특수계열을 제외하곤 국내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나 국내 고교 교육과정 3학기 이상 성적 취득자 등으로 수시 지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성신여대처럼 사회배려자 전형에서조차 검정고시 출신자의 지원을 막는 곳도 있다.
수시 비중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도 검정고시 출신자의 지원기회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은 전체 모집 인원의 74.0%를 수시로 뽑는다. 전년도에 비해 3.5%포인트 늘어나 역대 최고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경남대 경북대 연세대 전남대 한양대 등 5곳이 검정고시 출신의 전형을 제한하고 있다는 진정이 들어오자 시정 권고를 했다. 2015년에도 대교협에 “경제적 곤란자, 고연령자, 탈북자, 외국에서 성장한 자 등 다양한 성장이력과 배경의 검정고시 출신자에게도 수시합격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변화는 없다.
몇몇 대학은 검정고시 출신자들의 경우 내신이 없어 평가가 힘들고 역차별 문제도 있다며 반발한다. 2013년 인권위에서 시정권고를 받았던 서울의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검정고시 출신의 문호를 넓히면 내신 안 좋은 학생들은 다 검정고시 봐서 대학 오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내신 성적이 주된 평가 요소인 학생부교과전형의 경우 이런 비판이 유효할 수 있으나 다른 전형에서까지 지원을 막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검정고시 출신자의 지원을 받고 있는 서울대의 안현기 입학본부장은 “학종은 내신으로 줄 세우는 게 아니라 학생의 삶을 다각도로 보는 거라 평가가 어렵다거나 역차별이 생기는 문제는 없다”며 “많진 않지만 검정고시 출신 합격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자 지난해 8월 대안학교인 소명중고등학교의 정승민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교대 10곳과 한국교원대가 검정고시 출신 학생에 대해 수시전형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 6월 공개변론이 예정돼 있었으나 일정상 취소된 후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을 맡은 류광옥 변호사는 “대학에 합격시켜 달라는 게 아니라 동등한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며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늘어나는 수시 비중에… 눈물짓는 ‘검정고시’ 학생들
입력 2017-08-2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