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9월 입법전쟁’ 4대 쟁점법안 드라이브… “2004년과 다를 것”

입력 2017-08-24 05:00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23일 출범 100일을 맞아 문재인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를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 총력지원’을 예고했다.

하지만 주요 쟁점 법안들에 대한 여야 입장차가 확연하다. 특히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부자증세, 8·2 부동산 대책 후속입법, 권력기관 개혁 등 이른바 4대 쟁점 법안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일각에선 지난 2004년 노무현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진상규명법·언론관계법)의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개혁 입법과 부자증세를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며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다. 김광림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부자증세를 제외한 나머지 입법과제의 방향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재원대책 등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역시 ‘비판적 검토, 조건부 찬성’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케어 지원을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보수야당은 8월 결산국회에서부터 ‘복지 포퓰리즘’ 프레임을 내세워 맹공을 퍼붓고 있다. ‘건강보험료 폭탄’에 대한 우려와 소요재원 추계가 부정확하다는 이유에서다.

8·2 부동산 대책의 후속입법도 핵심 쟁점이다. 양도소득세 강화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에 방점이 찍혀 있다. 야당 대부분이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에 뚜렷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는 않아 상대적으로 합의가 수월할 수도 있다. 다만 소득세법 자체가 부자증세와 연동되는 만큼 여야 간 세부 협상이 입법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한국당이 법인세와 소득세 모두 인상을 반대하고 있어 원안대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국정원 개편,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개혁 역시 난제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와 국정원 개편에는 반대 입장인 반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공수처 별도 조직화’ 등 방식에 따라 찬성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 셈법이 더욱 복잡하다.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여야가 맞바뀐 원내 지형은 중요한 변수다. 법안 심사의 키를 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조세 관련 기획재정위원회, 권력기관 개혁과 직결된 안전행정위원회 등의 위원장을 모두 야당인 한국당이 맡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책임정치를 위해선 국회 협치의 장인 운영위원장은 여당이 맡는 게 관례”라며 위원장 조정 협상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여소야대 국면 속에 여당은 협치를 뒷받침하기 위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우 원내대표는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전날 제안한 국회선진화법 재검토 논의에 대해 “필요성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적극적으로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역시 큰 틀에서 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한국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8·27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국민의당 새 지도부의 협상 전략도 주목된다. 다수의 쟁점에 대해 유보적 입장인 국민의당으로선 여당과의 사안별 공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제안했던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야3당이 정의당의 참여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의 개혁입법 속도전은 과거 노무현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4대 개혁입법’을 연상케 한다. 총선 승리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에 대한 강력한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야당의 완강한 반대를 극복하지 못해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진보 진영의 숙원이었던 국가보안법 폐지는 여론의 관심에서 비켜나 ‘여의도 이슈’로 전락하며 실패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전면 폐지와 일부 개정 의견이 엇갈렸고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는 결국 국보법 폐지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사학법 강행 처리는 야당의 대대적인 장외투쟁 등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 재개정 수순을 밟아야 했다. 언론관계법 역시 원안에서 대폭 후퇴했으며 과거사진상규명법도 유야무야됐다.

당시 다수당이던 여당이 입법전에서 완패한 배경에는 민생을 전면에 내세운 야권의 조직적인 반대와 개혁 명제에 대한 여론전 패배, 당내 이견 조율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번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개혁입법 성패 역시 민생 밀착형 어젠다 설정과 원내 협상력 극대화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2004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게 여권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정건희 이종선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