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를 향한 정치권의 발언 수위가 도를 넘었다.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을 명시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막말’ 수준의 발언이다. 정치인은 법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한 신념을 자유롭게 말할 수는 있고, 말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며 “기소독점주의 폐단과 사법 부정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고 말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23일 한 전 총리가 의정부교도소에서 나온 직후 “검찰권을 남용하며 정권에 부화뇌동한 관련자들은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이라며 “사법정의가 바로 서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집권여당 대표와 대변인이라는 지위를 생각한다면 한 전 총리가 정권교체 후 정치보복을 당했고, 죄가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옥살이시켰으니 검찰과 법원 모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상고심에서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했다. 만기출소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결백을 입증하지 않는다. 한 전 총리의 공소장을 놓고 검사와 변호인 사이에 충분한 공방이 있었고, 1·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나온 사안이다. 억울한 피의자가 강압적 방법에 의한 자백을 근거로 기소돼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졸속 재판을 거쳐 교도소로 갔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시국사건과는 다르다. 판사 출신인 추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결정적 증거인 필적감정서가 조작된 사실이 확인돼 20여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한 전 총리 사건을 비유하며 ‘엘리트주의에 빠진 보신주의’라고 사법부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집권여당 대표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검찰 및 사법부 개혁에도 방해만 되는 말이다.
사법부를 향한 거친 언사는 민주당뿐이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놓고 야당 일부에서 나오는 발언도 위험한 수준이다. ‘김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은 대다수 양심적인 판사를 축출하는 사법 쿠데타’ ‘하급심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대법원에서 뒤집겠다는 알박기’라는 식의 발언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벌어진 기싸움을 감안하더라도 적절한 표현이 결코 아니다. 헌법 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법치주의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정치적 득실만 따지며 법관의 양심과 재판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발언을 계속한다면 많은 희생을 치르며 소중하게 가꾼 민주주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사설] 정치권, 사법부 독립 위협하는 발언 중단하라
입력 2017-08-23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