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서구교회의 몰락은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다. 새로운 게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책을 펼쳤는데, 읽을수록 머릿속이 선명해진다. 서구교회의 현주소를 마치 드론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발전된 현대성(advanced modernity)’의 유혹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복음을 얼마나 헐값 취급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는 시대를 살다’는 부제가 확 와닿는다.
저자는 세계적인 변증가 오스 기니스(사진). 특유의 변증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지금 우리에게 쏟아지는 공격 양상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짚어낸다. 로마시대 네로에서 러시아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기독교 박해자와 이단들은 기독교를 금지하는 전면전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21세기의 공격은 훨씬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여기서는 신앙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금지하는 대신 “여기서는 신앙이 필요 없다”는 말로 무장해제하는 식이다. 선택의 자유가 무한대로 주어지고, 권위가 무의미하게 치부되는 현대사회에선 ‘하나님도 소비자의 한 선택품목’으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글로벌 정보화 시대의 특징 역시 기독교인들에게 유리할 게 하나도 없다. 저자는 적자생존을 지나 ‘속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astest)’ 시대가 됐다고 진단한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원하는 것을 몇 초 만에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동시에 모든 업무를 초스피드로 처리하라는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생각의 패스트푸드인 인터넷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사유할 시간이 있는가. 성경의 지혜라는 빛에 비추어 충분히 생각하고 분별력을 갖출 시간이 있는가.” 저자의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주의의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세속주의의 강화는 기독교의 초자연적 세계관을 위협한다. 신약의 초대교회 교인들에겐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초자연적인 은사가 퍽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사도행전 본문 설교를 듣는 사람 중 상당수는 말씀 그대로를 믿지 않는다.
갈수록 무신론자의 공격은 집요하고 영향력도 커진다. 프리드리히 니체, 버트런드 러셀, 리처드 도슨,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샘 해리스까지, 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무신론자들 앞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할 말을 잃는다.
이렇듯 심란하기 짝이 없는 현실 앞에 우리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오직 예수께만 ‘흔들림 없는 충성’을 바치며 저항하거나 거대한 시대의 물결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가거나.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된 원서의 제목은 ‘Impossible People’이다. 11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개혁가 피터 다미안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성직 매매, 성직자 간 동성애 등 성적 타락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불허했던 그에게 ‘조종 불가능한 사람’,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에서 붙인 별명이다. 결국 저자의 요구는 21세기의 불가능한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만 읽고 나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대안 제시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그의 전작 ‘르네상스’(표지)의 자매편이라고 이 책을 소개한다. 그 자체로 시대를 바꾸는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담고 있는 그 책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결국 “오늘날의 과제는 복음에 대한 우리의 신실함”이라고 저자는 정리한다. 2000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대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저자는 복음주의의 거장 존 스토트 목사의 임종 3주 전 병상 방문 일화를 소개하며 우리를 격려한다. 스토트 목사는, 거의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마지막 숨이 떨어질 때까지 주님께 신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이나 온갖 유혹 앞에서도 삶의 매 순간 주님께 충성하며 마지막 숨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신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많은 도전을 안겨주는 책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교묘하고 집요해진 기독교 공격… 신실함으로 맞서라
입력 2017-08-2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