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주선양(沈陽) 총영사관과 랴오닝성 한중우호협회가 공동 개최한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학술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제목이 한국 측은 ‘수교 25주년의 회고와 전망’, 중국 측은 ‘동북아의 지속 발전 속 한·중 관계’인 것에서 보듯 현재의 양국 관계 때문에 개최하는데 애를 먹었다. 양국 전문가들은 상호 이해와 소통이 충분치 않았음에 공감하면서도 사드와 북한 문제 등 현안에 대해선 여전히 평행선을 그었다. 새로운 25년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시작은 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신(新)중국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시진핑 특색의 권위주의’ 중국에 주목해야 한다. 올가을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수십년 유지된 집단지도체제 대신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시진핑 단독체제를 수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 주석은 집권 몇 년 만에 반부패 명분으로 반대파를 숙청했고, 이전 지도자들이 시도도 못했던 군사개혁을 전격 단행할 정도로 엄청난 힘과 추진력을 갖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것은 이제 시 주석으로 통한다.
시진핑 특색의 중국 외교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유념해야 한다. 양국은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동반자이다. 중국도 북한이 도발하면 국제사회가 결의·제재하고, 재도발하면 다시 결의·제재하는 옛 방식(老路)의 북한 다루기에 지쳤다. 한·중은 대북정책에 공동이익이 많으므로 한국이 신방식(新路)을 제안할 때 한국의 ‘운전석’ 착석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앉아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운전석에 언제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대리운전인지, 앉아는 있는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북한 문제의 연착륙에 도움이 된다면 브레이크나 내비게이션 역할이 더 맞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경쟁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경제관계에도 대비해야 한다. 롯데는 사드 배치 이후 경제제재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롯데와 현대자동차 등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은 중국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소비자 기호의 변화가 주 원인이다. 백화점 대신 모바일쇼핑이 보편화되고, 자동차시장이 고가 외국산과 저가 중국산으로 이원화되면서 한국산의 위상이 애매해지고 있다. 자체 위기임에도 사드 제재 뒤에 숨어 있기엔 한국경제 상황이 급박하다. 기술격차가 축소되는 상황이지만 중국엔 아직 부족한 2%를 채워 넣어야만 한국경제에 승산이 있다.
새로운 25년의 한·중 관계 시발점은 사드이다. 지난 25년이 빛보다 그림자로 덮인 이유는 사드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병들게 된다. 위질기의(諱疾忌醫)란 말이 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땐 탕약, 혈맥에 있을 땐 침, 내장에 있을 땐 약술로 고칠 수 있지만 골수에 이를 땐 이미 늦다. 아직 침으로 고칠 수 있을 때 손을 써야 한다. 사드의 성공적 극복은 양국 간 갈등 통제능력을 증진하고 다른 사안이 발생해도 위기관리 작동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양국은 사드 논란이 정리되면 논란 이전 수준의 회복·안정기를 거쳐 새롭게 관계를 격상하는 재도약기로 나아가야 한다. 원칙 있고 대범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접근을 한다면 양국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
이번 선양 회의의 키워드는 초심이었다. 양국은 많은 난관에도 수교를 전격 단행했다. 우리에게 수교는 기존 남북 간 힘의 균형을 일거에 한국으로 가져오는 전략적 결단이자 북방정책의 화룡점정이었다. 당시 대중 협력을 통해 한국의 통일환경 조성과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으며, 그 목표는 아직도 불변이다. 통일대업을 위해 수교 초심을 기억하고 현 난관을 상호존중과 구동화이(求同化異·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해소) 자세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50주년 한·중 수교 기념식을 통일 한반도와 동북아공동체 시대에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시사풍향계-황재호] 한·중관계 새 25년, 초심 기억해야
입력 2017-08-23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