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영순] 변화하는 산업안전 패러다임

입력 2017-08-23 17:49

지난 20일 STX조선해양의 잔류오일탱크에서 폭발 사고로 하청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5월 1일 노동절엔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과 골리앗 크레인 충돌로 6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두 대형사고 모두 희생자가 하청 노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는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96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많다. 이렇게 큰 희생자를 가져오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비용부담을 이유로 유해·위험한 작업을 대기업(원청)에서 중소기업(하청)으로 외주화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산업안전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하며, 산업안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어 지난 17일 고용노동부는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산업안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사망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다섯 가지 방안이 들어 있다.

첫째, 책임주체의 전환이다.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이 사업주 중심에 있던 것을 원청·발주자 등의 책임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유해·위험성이 높은 14개 작업은 도급을 금지하는 한편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 장소를 사업장 내 모든 장소로 확대하고, 하청 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한 원청의 책임을 확대한다. 위반 시 처벌도 하청과 동일하게 한다. 표준안전보건관리비 제도를 조선업까지 확대하고,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위험성 정보제공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둘째, 보호대상의 전환이다. 특수형태 노동종사자 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보호대상을 확대한다. 음식배달 대행원 등에게도 종사자별 특성에 따라 교육실시와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셋째, 보호범위의 전환이다. 신체건강 보호차원을 넘어서 정신건강까지 보호한다. 고객응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건강보호 가이드라인도 보급할 예정이다.

넷째, 사고조사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사고조사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위주로 진행됐지만 조사 후 구조개선까지 유도하는 방법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토록 하고, 안전이 보장되는 경우에만 작업중지를 해제할 계획이다. 피해가 크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경우 국민이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조적 문제까지 도출해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다섯째, 사업장 안전 보건관리시스템의 전환이다. 우선 안전보건관리를 외부위탁 하던 것을 정규직이 직접 수행토록 할 예정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대해서 알 권리가 보장되도록 개선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안전보건관리를 반영토록하며, 공공 발주공사의 안전관리 예산을 예정가격으로 계상토록 할 예정이다.

이 같은 산업안전 패러다임 변화를 성공적으로 유인하려면 입법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사회과학자 토머스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 개념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생성, 발전, 쇠퇴, 대체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했다. 패러다임 변화과정에서 기업은 많은 과실(果實)을 얻어 내려고 시도한다. 아직 법률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법제화되기까지 많은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산업안전의 패러다임 변화에 법률적 안전장치가 쉽게 따라가지 못하면서 하청 노동자의 안전망도 허술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현실로 나타났기에 더욱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부분이다.

일명 청탁금지법이 제정·시행돼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패러다임으로 변화되기 위한 관련 법령의 조속한 제·개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패러다임 변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담보로 이익을 편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조선소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은 노동자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