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축산 재난’… 공장식 사육, 패러다임 바꿔야
입력 2017-08-23 05:01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계란에서 검출된 지난 14일 이후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업무 실무진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24시간 가동된 상황실엔 시시각각 허용 기준치를 초과하는 부적합 산란계 농가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쪽잠을 자며 집계한 각종 통계에는 피로도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오류는 잇따랐고, 브리핑을 할 때마다 국민 불안감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주제만 바뀔 뿐 연중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늦가을부터 봄철 사이엔 으레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고, 최근엔 난데없는 여름철 AI까지 터졌다. 급기야 살충제 계란 문제로까지 번졌다. 농식품부가 ‘연중 상황실’을 꾸리게 만들 정도로 축산 전염병과 위해성 논란은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
2000년부터 시작된 축산 재난
한국에서 본격적인 축산 대란이 시작된 건 2000년부터다. 22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0년 3월 24일 경기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구제역은 소·돼지·염소 등 발굽이 2개인 동물에 걸리는 병이다. 치사율이 5∼55%에 달한다.
당시만 해도 23일간 15건이 발생하고 막을 내렸다. 살처분도 2216마리에 머물렀다. 하지만 10년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는다. 2010년 발생한 구제역은 역대 최대 규모인 6691농가를 덮쳤다. 당시 살처분 후 땅에 묻은 수는 무려 353만5792마리였다.
AI의 등장 시기는 구제역보다 늦은 편이다. 첫 AI는 2003년 12월 10일 충북 음성에서 발생했다. 당시 528만5000마리의 닭 등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여파는 더 심했다. 한 번 발생하면 100일 정도 지속되기 일쑤였다. 매년 수백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를 파묻는 일은 일상이 됐다. 특히 2014년부터는 여름철까지 AI가 지속되기 시작했다. 2016∼2017년에 살처분된 가금류 수는 3807만6000마리에 달했다. 한국이 동남아시아처럼 AI ‘상시 발생국’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는 특히 살충제 계란까지 등장하면서 방역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51만1929개의 계란을 폐기해야 된다고 밝혔다. 이 중 418만3469개가 수거돼 폐기됐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과대 교수는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육 방식 등 변화 필요
가축 재난 상시화 원인 중 하나로는 박근혜정부 때 개편한 시스템이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전부터 ‘식품 안전’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정부조직법을 뜯어 고쳤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소관 부처를 농식품부에서 처로 승격한 식약처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전체 300여명이던 농식품부 소속 수의사 중 171명이 식약처로 소속을 옮겼다. 업무를 이관했지만 농가 등 생산 단계에서의 방역 업무는 여전히 농식품부 소관이다. 전문가를 절반 정도 줄인 여파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구제역은 2014년 이후 올해까지 4년간 연속으로 발생했다. 최악의 AI와 여름철 AI도 2014년부터 시작됐다. 방역망이 허술해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공장식 축산’ 문제가 제기된다. 환경단체는 구제역·AI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여기서 찾는다. 밀집된 사육 시설을 방목 등 친환경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100대 과제를 통해 ‘깨끗한 축산’ 환경 조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선 정부 후 민간’ 체계를 주문한다. 송 교수는 “정부가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관리만 제대로 해도 문제가 안 생긴다”고 말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정부는 철저한 모니터링을, 민간은 밀집 사육 등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