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에 근거한 언어처방, 암환자에게 용기”

입력 2017-08-23 00:04

암 환자가 삶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의사가 진지하게 듣고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문장을 처방한다. 히노 오키오(63·사진) 준텐도대학 의학부 병리·종양학 교수가 2008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암철학 외래’의 풍경이다. 암 환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언어처방전’에는 성경의 가르침이 주된 재료로 쓰인다.

22일 도쿄 신주쿠 요도바시 교회에서 만난 히노 교수는 “최첨단 의료의 제공뿐 아니라 전인(全人)적인 치료가 의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암철학 외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암철학은 물리적 치료와 병행하는 정신적 치료다. 진료차트도 청진기도 없는 홀가분한 상태에서 환자와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눈다.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뒤 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면담을 하고 나면 환자의 얼굴색이 180도 달라집니다. 지난 9년 동안 3000여명을 만났는데 그중 안색이 나빠져서 돌아간 사람은 1명도 없습니다.”

준텐도대학병원에 처음 개설된 암철학 외래는 2013년 일반사단법인이 됐다. 일본 전역에서 130여개에 달하는 ‘암철학 카페’가 생겼다. 환자와 의료진이 경험담과 조언을 공유하는 자발적인 모임이다. 히노 교수는 요도바시 교회를 비롯한 7곳에서 정기적으로 무료 강의와 개별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교회에서 열리는 암철학 카페에도 비(非)기독교인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히노 교수는 면담 때 직접 전도를 하지는 않지만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조언을 한다. “당신이 암에 걸린 게 어떤 특별한 사명이 주어진 계기일 수 있다”면서 에스더가 사명을 깨닫는 대목(에스더 4장)을 은연중에 소개하는 식이다.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안 해도 많은 환자가 그걸 압니다. 암철학이 결국 인간을 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수십명의 환자가 크리스천이 됐습니다.”

그의 언어처방전을 모은 책 ‘위대한 참견’은 일본에서 10만부 이상 팔렸고 지난해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그는 “무료에 부작용도 없는 마음 치료법인 암철학 외래가 한국에서도 시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