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로… 가해자로… 성범죄에 노출된 ‘아이돌’

입력 2017-08-22 05:00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32)씨를 구속기소했다. 기획사에서 데뷔를 준비하던 10대 여자 연습생들을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였다. 김씨는 피해 연습생들에게 소속사를 탈퇴하면 수억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며 협박을 일삼은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인기그룹 샤이니의 멤버 이진기(28·예명 온유)씨는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12일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연예인이나 연예기획사가 연루된 성범죄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 2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253개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은 모두 1200명이다. 이 중 만 19세 이하가 347명이나 된다. 만 9세 이하도 10명이었다. 만 20세 이상인 연습생 853명 중에서도 상당수는 10대 때부터 학교보다 연예기획사로 ‘등교’한 이들이다. 일부 연예기획사를 제외하면 형식적으로만 학교에 다니며 하루라도 빨리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연습생들에게는 성의 유혹이 뒤따른다. 선배 연예인들과 만나거나 소속사의 모임에 참석하며 성문화를 직간접으로 접한다. 인기그룹 빅뱅의 탑이 군복무 전 대마초를 피웠을 때에도 소속사 연습생이 함께 있었다.

연습생들은 성적인 유혹을 담은 가사, 선정적인 율동을 강요받아도 거부할 수 없는 처지다. 성교육에서는 오히려 또래들보다 더 취약하다. 초·중·고등학생은 매년 15시간씩 성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학과 수업도 다 참여하기 힘든 연습생들이 성교육까지 받기는 쉽지 않다.

연습생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다. 콘진원은 성범죄예방차원에서 연예기획사 등록 여건을 강화했다. 연예기획사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과 성범죄 경력 조회를 필수로 하고 있다.

그래도 청소년 연습생들 성교육까지 신경 쓰는 연예기획사는 드물다. 방법은 있다. 연예기획사가 콘진원에 성교육을 요청하면 청소년 연습생들에게 출장강의를 제공한다. 1년에 세 번 신청할 수 있다. 성교육 강사가 신청 기획사를 찾아 연습생을 모아놓고 2시간 동안 연예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례들 위주로 교육을 한다. 연습생 교육을 진행한 신그리나(34·젠더교육연구소 이제 연구원)씨는 “연습생은 연습만 하고 연애도 금지돼 또래보다 (성에 대해) 더 모른다고 느꼈다”며 “남자 연습생의 경우 연예인 성폭력 관련 질문을 많이 하고 여자 연습생은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에 대해 주로 묻는다”고 말했다.

콘진원이 자유한국당 염동열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연습생 대상 성교육은 32회 뿐이었다. 2015년 9회, 2016년 18회였고 올해는 현재까지 5회였다. 이달 기준 전국의 연예기획사 수는 2190개다. 강사 수도 부족했다. 지난 3년간 한 명의 강사가 연습생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다 올해 초가 돼서야 2명으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연습생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는 “피상적인 교육이 아닌 이성교제, 남녀의 차이, 성적 동의를 얻는 법과 하지 않는 법(거절하는 법), 성관계, 피임, 성희롱 예방교육 등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화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겸임교수는 “(연습생들에게) 성폭력에 대한 개념과 성폭력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기획사 직원들에 대한 성교육도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 의원실은 연예기획사 연습생들이 의무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