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식약처장, 업무 장악 안 되면 거취 고민”

입력 2017-08-21 21:52
제주도 관계자들이 21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영농조합법인 저장창고를 찾아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 뉴시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21일 살충제 계란 파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거취를 고려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야당의 사퇴 요구를 다독이는 한편 류 처장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국내산 계란은 문제없다”는 지난 10일 류 처장의 발언을 거짓말로 규정하며 해임 공세를 폈다. 이 총리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일정 시점까지 업무 장악이 안 되면 (류 처장의)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처장은 의약품 분야 전문가이고, 공교롭게도 공석이던 차장 자리에 19일 식품안전 분야 전문가를 임명했다”며 야당의 즉각적인 해임 요청에는 선을 그었다.

회의에서는 살충제 계란 파동의 원인을 둘러싼 여야 간 ‘네 탓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은 문재인정부의 대응 미숙을, 여당은 박근혜정부의 방치 책임을 지적하며 팽팽히 맞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정부의 미숙한 초기 대응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성급한 조기 진화 시도와 류 처장의 실언 등이 사태 확산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기동민 의원은 2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어느 정부의 책임이냐’에 관심이 없다. 모든 게 문재인정부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 의원은 “공무원들이 여전히 조급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관리감독 책임을 서로 미룬다. 정부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잘못된 행정행위”라고 비판했다.

관련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들도 이러한 우려에 공감했다. 농해수위 소속 김철민 의원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분이 검증되지 않은 농식품부 말만 믿고 섣불리 얘기한 건 큰 문제”라며 “정확한 데이터도 없이 발표해 본인도 코너에 몰리고 여당도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직후 3일간의 전수조사로 논란을 조기 진화하려던 정부의 성급한 대처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됐다. 김현권 의원은 “정부가 3일 만에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할 때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며 “서둘러 봉합하거나 안전하다고 말하기보단 좀 더 진상을 파악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정부 출범과 관계부처 인선이 완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밀집 사육 및 살충제 계란 문제가 기존 정부부터 반복돼온 문제라는 점에서 향후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각 부처에 분산된 관리감독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은 “밀집축산 해소와 복지축산으로의 전환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복지축산 전환 및 관리감독 체계 일원화로 축산업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위 소속 남인순 의원은 “이원화된 체계에선 식약처가 농민 대상 교육을 직접 시킬 수 없다. 총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임시방편일 뿐 식약처 중심의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