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프랑스 농촌, 유행처럼 번지는 ‘농민 자살’ 왜?

입력 2017-08-21 18:47 수정 2017-08-21 21:45
“굉장히 순진한 사람이었어요. 결혼하고 싶어했고, 아버지가 되고 싶어했죠.” 장피에르 르겔보(46)의 여동생 마리가 말했다. 장피에르는 한때 키우는 젖소의 수가 60마리를 넘었던 프랑스 남부 브르타뉴 지역의 부유한 축산 농부였다. 하지만 우유 가격이 내려가고 빚이 불어나면서 우울증과 불안이 찾아왔다. 장피에르는 지난해 겨울 어느 추운 날 집 뒤편 숲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쐈다. 마리는 “그 숲은 그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이자 그가 사랑하던 들판 옆이었다”고 전했다.

프랑스 농가에 자살이 유행처럼 조용히 번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공공보건 당국이 농업 관련 단체, 의학계와 손잡고 농가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고 NYT는 덧붙였다.

농부들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집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바쁜 사회와 격리돼 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하며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업인 농사일을 돕거나 이어받을 자녀가 없는 경우 마음의 짐은 배가 된다. 농축산물의 가격이 떨어지면 부채와 스트레스가 상승한다. 사실 농가의 높아지는 자살률은 비단 프랑스의 일만은 아니다.

프랑스 보건 당국이 공개한 가장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07∼2011년 985명의 농부가 자살했고, 전체 인구의 자살률보다 농부 집단의 자살률은 22%나 높았다. 이러한 수치는 실제보다 더 낮게 조사된 것일 수 있다고 보건 당국은 우려했다. 의사 베로니크 마그르노르망은 “사망진단서를 써주는 의사가 유족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자살 사실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외부적인 요인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다. 빚이 생기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투자하고, 투자하기 위해 또 빚을 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2015년 유럽연합(EU)이 축산농가 쿼터제를 폐지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농가 수가 늘어나면서 축산물이 과잉공급 상태에 이르렀다. 농업 단체들은 농가가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만큼 우유 가격이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 농가의 큰 수출시장이었던 러시아에 대한 EU의 경제제재가 시작됐고, 수출길도 막혔다.

다행히 프랑스 정부는 최근 농가의 자살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수면 위로 떠올렸다. 프랑스 전역에 재정적, 의료적, 법적 지원을 담당하는 단체가 1350여곳이나 만들어졌다. 그러자 자신의 고통을 알리고 싶지 않아했던 농부들이 하나둘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릴 벨리아르(52)도 그중 한 명이다. 얼마 전 그가 키우던 농장의 염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 20년이나 이어오던 농장 운영이 어려워지고 부채가 쌓였다. 시릴은 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자선단체들이 그의 생계 지원에 나섰다. 지난 3월 젊은 농부에게 농장을 팔면서 그는 드디어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과 같이 살 작은 집도 마련했다. 아이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