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와 ‘가을의 박정권’이라는 두 가지 과학 법칙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중 ‘가을의 박정권’은 SK 와이번스 베테랑 박정권(36)이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맹타를 휘두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가을남자’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박정권은 올 시즌 전반기에 타율 0.258로 크게 부진했다. 그런데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기 시작하자 귀신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기 타율은 0.316이다. 특히 입추(立秋)인 지난 7일을 기준으로 하면 성적은 상전벽해 수준이다. 7일 이전까지 타율 0.252 9홈런 29타점으로 초라했지만 이후엔 타율이 무려 0.440으로 2할 가까이 뛰었다. 장타율은 0.920에 달한다. 팬들 사이에선 “박정권의 가을 예보가 기상청보다 정확하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올 시즌 처음 SK 지휘봉을 잡은 트레이 힐만 감독조차 “박정권의 별명을 알고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불타오른다고 들었다”고 했다.
박정권이 ‘가을남자’가 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고의 무대인 포스트시즌에서 박정권은 팀의 6년(2007∼201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2010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선 14타수 5안타 1홈런 6타점의 활약을 펼쳐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정규시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전반기 타율이 0.269에 불과했지만 후반기 0.315로 뛰었다. 2014년에는 타율이 0.254에서 0.394로, 2015년에도 같은 기간 타율이 0.261에서 0.303으로 4푼 이상 올랐다. 2015년에는 홈런도 전반에는 7개에 불과했지만 후반기에는 14개로 두 배를 때려냈다.
그런데 정작 박정권 본인은 ‘가을남자’라는 별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박정권은 21일 구단을 통한 인터뷰에서 “그런 별명이 상당히 민망하다. 가을뿐 아니라 봄과 여름에도 좀 잘해 팀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가을에 유독 강한 이유에 대해선 “한 번도 가을을 의식해 본적이 없다. 우연찮게 타격 사이클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을남자’의 복귀는 SK에게 큰 기쁨이 되고 있다. SK는 전반을 3위로 마쳤지만 후반 초반 심각한 부진으로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 DNA’를 가지고 있는 박정권의 맹타로 다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18일 LG 트윈스전에선 홈런 두 방을 비롯해 5타점을 쓸어 담았고, 19일 KIA 타이거즈전에선 1회 기선을 제압하는 스리런포를 쏘아 올렸다. 덕분에 지난 16일 5위 넥센 히어로즈와의 승차가 4경기까지 벌어졌지만 지금은 5위 롯데 자이언츠와의 승차를 두 경기로 좁혔다. 가을야구가 사정권에 들어왔다.
특히 박정권이 살아나면서 팀은 좌타 거포 부족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게 됐다. 홈런 선두를 다투던 한동민이 지난 8일 인천 NC 다이노스전에서 왼 발목 내측 측부인대 파열 부상으로 시즌 아웃돼 비상이 걸렸지만 박정권이 훌륭히 이를 메워주고 있다.
박정권은 “팀의 주장으로서 남은 경기에서 책임감 있게 임무를 잘 수행해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가을 예보 기상청보다 정확해”… ‘추남’ 박정권, ‘입추’ 이후 불방망이
입력 2017-08-22 05:02 수정 2017-08-22 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