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근로계약서 확산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PC·스마트폰을 활용해 근로계약서 작성이 간소화되면 그동안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온 근로계약서 미작성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근로계약서 체결률은 61.4%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밋빛 희망’의 반대편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자근로계약서는 지난해 1월 시범사업으로 처음 도입됐다. 고용노동부에서 취업포털사이트인 알바천국에 요청해 처음으로 전자근로계약서 작성시스템이 구축됐다. 이후 알바몬 등 다른 취업사이트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전자화된 근로계약서가 서면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최근 고용부는 롯데지알에스 등 7개 기업과 전자근로계약서 도입·확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노동 현장에선 정책 취지에 공감한다. 다만 ‘서면’으로 작성해 왔던 근로계약서가 전자화되면서 발생할 법적효력 문제 등에서 정부가 촘촘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교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 따라 전자문서 형태로 작성·교부된 근로계약서도 서면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는 유권해석을 제시한다. 노무법률사무소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21일 “법적효력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상에도 전자근로계약서의 효력에 관한 단서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문서가 위·변조와 보안에 취약하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다. 고용부는 지난해 8월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전자근로계약서 시스템이 갖춰야 할 조건을 열거했다. 한쪽이 임의로 수정할 수 없도록 문서를 가급적 ‘읽기전용문서’로 저장하고, 수정 시 상대 당사자가 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것 등이다.
하지만 정부 권고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마트노조는 전자문서 형태로 체결된 파트타임 근로자의 근로계약서가 임의로 수정됐다고 문제제기했었다. 당시 노조는 사측이 직원 아이디로 로그인한 뒤 회사 서버에 저장된 근로계약서를 수정하고 전자서명까지 임의로 날인했다고 주장했다. 서면 근로계약서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한 근로감독관은 “전자근로계약서가 확산되면서 그동안 없던 형태의 법적다툼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정확한 대응 매뉴얼 등이 없어 현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다 영세기업은 정부가 제시하는 다양한 조건을 충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 영세기업에서 주로 근로계약 미체결이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업체들이 알바천국이나 알바몬 등 취업사이트에서 무료로 구축된 시스템을 이용할 수는 있다. 다만 업체들이 내부정보인 자사의 근로계약서를 제3의 업체 서버에 일정기간 저장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작성된 근로계약서를 자동으로 쌍방에 보낼 수 있는 정보처리시스템이나 사내전산망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영세기업에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종이’는 가라… 정부, 전자근로계약서 확산 ‘잰걸음’
입력 2017-08-22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