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강력해진 폭우 때문에 백두대간의 주요 산들이 산사태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리산 천왕봉이나 설악산 대청봉 주변 지역은 석재를 채취하느라 파헤쳐놓은 채석장이나 스키장 공사 중인 곳처럼 나무가 사라지고 흙과 바위가 드러났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20일 이런 내용이 담긴 ‘2017 기후변화 산사태 현장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녹색연합이 2015년 7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2년간 전국 고산지역 등의 산사태 실태를 현장 조사한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피해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2000년 이후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부권역에 36번의 산사태가 났다. 1990년대까지는 비가 많이 오면 인근 마을과 농경지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수해의 양상이 산사태로 바뀌었다.
특히 천왕봉과 제석봉 사이 북사면 일대는 하늘에서 보면 마치 채석장처럼 변형됐다. 2014년 7∼8월 산사태 때문에 쓸려 내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발 1700m 일대 아고산대 지역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의 천연림도 사라졌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구상나무가 기후변화 등으로 고사하고 있는데 허약해진 구상나무 등의 토양층으로 집중 강우가 스며들어 산사태 발생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지역은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초목이 자라나지 못하고 비만 오면 토사가 쓸려 내려가는 흉물스러운 경관으로 방치되고 있다. 이처럼 지리산에서만 산사태로 훼손된 곳이 4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설악산도 훼손이 심각하다. 250여곳이 산사태로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봉과 중청대피소 사이에서 천불동계곡 방향으로 발생한 산사태가 피해 면적이 가장 크다. 설악산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1만8648㎡나 쓸려 내려갔다. 산사태 훼손 지역 가장자리는 초목이 자라는 등 회복되고 있지만 이는 10% 미만으로 추정됐다. 경사가 급한 곳은 암석과 흙이 드러나 있으며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녹색연합은 내다봤다. 오대산 두로봉과 비로봉 사이 해발 1260m 근처도 무너졌다.
녹색연합은 “(산사태는)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자연 생태계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를 말해주는 예고편”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에 전국 산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기상이변에 산사태 속출… 백두대간 무너진다
입력 2017-08-21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