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생 투신했는데… 실태확인도 안되는 평생교육시설

입력 2017-08-21 05:00

부산의 한 보건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병원 실습 첫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건고와 같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실습과정 전반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시교육청과 노동청은 “우리에겐 ‘학교 밖 청소년’을 관리·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오후 5시20분쯤 장모(17)군은 실습하던 A병원에서 퇴근 시간보다 40분 일찍 나와 맞은편 아파트 15층에서 투신자살했다. 경찰은 ‘개인적 이유’ 때문에 장군이 투신했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과 교사 등을 조사했더니 장군이 평소 내성적이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며 “장군의 유서에도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단순 자살사건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소속 서동현 부산보건고 교사는 “하필 왜 실습 첫날에 자살했는지, 실습시간이 끝나기 40분 전에 실습생이 무단 귀가하는데 왜 아무도 막지 않았는지 등 의문투성이”라며 “실습과 죽음 사이의 연관성이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교육청과 부산고용노동청은 보건고가 정규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평생교육법 제31조 2항에 따라 고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 인정되는 민간시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50여곳, 재학 중인 20세 이하 미성년 학생 수는 1만4000여명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시교육청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인허가만 담당할 뿐 관리·감독 책임은 현행법상 없다”고 말했다.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과 달리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의 경우 현행법상 실습과정도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교육청은 이들로부터 매년 운영계획서를 받고 교사 대상 정기연수를 개최한다. 실습과정에 문제가 발견되면 노무사가 포함된 점검단이 현장조사를 나선다. 그런데도 실습과정에서 학습권 침해, 노동권 침해 등 문제가 반복돼 왔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조기 취업’ 형태로 변질돼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2014년 이후 현장실습생 중 사망자만 5명인 것으로 알려져 거센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간호 요양 조리 미용 등 다양한 분야로 실습을 나가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의 ‘학교 밖 청소년’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5년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는 학교 밖 청소년의 학력취득과 사회 진입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본격화하겠다며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종합대책’을 관계부처와 논의했다. 각 시·도교육청도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숙견 특성화·마이스터고 현장실습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불거져 나왔던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현장실습 문제가 평생교육시설에서는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전국 평생학습시설의 실습과정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