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1721일의 대북전략은

입력 2017-08-20 18:16

한껏 고조됐던 한반도 안보 위기가 일단 숨을 고르는 분위기다. 최근 불안감이 극대화된 와중에 취임 갓 100일을 넘긴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안 된다. 한반도에서의 군사 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천명했다.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쉬운 길을 걷지 못했다. 북한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계속해서 수위를 높여가며 도발을 감행했다.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는 여전히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문제로 언제든 극한 대결로 치달을 여지가 있다. 안보 또는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험난한 배경 탓인지 문재인정부와 집권여당 인사들이 유달리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보수정권 9년 간 잘못된 전략과 정책으로 남북관계는 파탄 났고, 다른 중대한 외교 현안 역시 너무 많이 잘못 나갔다는 게 그 요체다. 예컨대 이명박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현실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대북정책 기조로 일관하다 남북관계는 멀어지고 북핵 문제의 고도화만 가져왔다. 박근혜정부 역시 남북관계 개선 또는 진전에 대한 의지는 전혀 없이 강공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여 남북 소통이 철저히 단절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 듯하다. 결국은 이명박·박근혜정부가 잘못 대처한 남북관계로 인해 북핵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으며,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핵·개방·3000은 구호에 가까웠을 뿐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유인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이른바 ‘돌직구’만 고집하다 제대로 시동도 걸어보지 못한 채 사장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북핵 및 미사일 고도화는 지난 9년의 보수정권 시절 강경한 대북정책에서 비롯된 결과물만은 아니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2002년 2차 북핵위기 이후에도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목표로 핵프로그램을 고도화시켜왔다. 그 첫 결과물이 참여정부 4년차인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 도발이다. 2007년 북핵 2·13 합의, 10·3 합의, 10·4 남북정상선언 이후 북한은 조금씩 속도 조절은 했지만 그럼에도 큰 그림은 변화하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논의까기 거론됐던 10년 전 상황과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북 유화모드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이 북핵 문제 해결을 이끈다는 논리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위 ‘햇볕정책 2.0’ 또는 ‘대북 포용정책 2.0’ 버전으로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나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이는 지나친 낙관론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인은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현 상황에서 우리와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이다. 그렇다면 북측과의 대화를 위한 당위성에만 매몰되지 말고 미국을 십분 활용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현재 흐름은 조만간 북·미 간 협상 국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남북 관계가 우리 정부의 힘만으로 정상궤도에 오르기 힘들다면 미국 손을 빌려 움직이는 방법을 잘 짜봐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자 당사자로서 미국에 우리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필요한 부분은 요구하는 식으로 북핵 문제의 진전을 가져온다면 이후에 남북 관계를 개선시킬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앞으로 1721일의 임기를 남겨뒀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네 탓’ ‘보수정권 탓’ ‘적폐 탓’을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출범 100일을 지낸 문재인정부가 앞으로는 ‘네 탓’ 없이 북한 문제를 이끌 실용적인 방법론을 고민하는데 주력하면 어떨까.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