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는 18일 완료됐지만 과제는 산적해 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의 이의제기 절차가 남았고, ‘친환경 인증’ 개선책도 마련해야 한다. 군사작전하듯 진행된 전수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두고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산란계 농장 49곳 중 일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이의제기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살충제 잔류허용기준치를 초과한 농장에 대한 벌칙조항은 고의성이 입증되는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매우 강한 편이다. 대부분 부적합 농장이 기준치를 소량 초과하고 있는 만큼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농장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재검사를 원하는 농장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서도 “검사기기가 잘못 쓰이거나 샘플 채취 잘못 등 명백한 실수가 있지 않다면 재검사 결정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일 만에 급박하게 진행된 전수조사 자체의 신뢰성이 낮은 상황에서 재검사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강대 이덕환 화학과 교수는 “국내 조사 장비나 인력 상황을 볼 때 3일 만에 이뤄진 전수조사는 정확할 수가 없다”며 “불확실한 전수조사가 오히려 더 혼란을 야기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가에 판매되던 친환경 인증 농가의 계란에서 문제가 집중 확인되면서 인증제도 개선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전수조사 결과 전체 49개 부적합 농장 중 31개가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장이었다. 허용기준치보다는 낮지만 잔류 살충제가 검출된 농가도 37개에 달했다.
전국 64개의 민간 인증심사기관에 농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엄격한 인증심사를 수행해야 할 인증기관들이 관료들의 퇴직 후 ‘낙하산’ 자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농식품부 김영록 장관은 “살충제 계란만큼이나 친환경 인증제에 대한 국민들의 상실감이 굉장히 크다”며 “친환경 인증 기준부터 철저히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미리 시료가 채취된 일부 지역 검사도 여전히 논란이다. 부적합 농장 2곳이 나온 울산지역의 경우 시료채취일은 지난 1∼2일이었다. 약 2주가 지나서야 검사가 진행된 셈이다. 농식품부 허태웅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문제가 터지기 전에 다른 조사 건으로 채취돼 있던 시료였고, 전수조사가 시작되면서 살충제 잔류 검사가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피프로닐의 경우 반감기가 10일가량이다. 미리 채취된 시료 중 자연적으로 살충제 성분이 감소하면서 적합판정을 받은 농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엉터리 발표로 피해를 입은 농장이 배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7일 농식품부는 적합판정을 받은 9개 농장을 부적합 농장으로 발표했었다.
소비자 불신이 커지면서 계란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8일 현재 계란 1판의 소매가는 7358원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7000원대 후반을 기록하던 데서 떨어진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49개 농장의 계란출하가 금지되겠지만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고, 오히려 이번 파문으로 계란에 불신을 갖게 된 소비자들의 수요 감소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열린 제4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전수조사 결과에 따른 수급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한 뒤 관련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세종=정현수 신준섭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3일 만에 ‘콩 볶듯’ 전수조사… 농가도 소비자도 불신
입력 2017-08-18 21:50 수정 2017-08-18 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