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불법 유출됐던 ‘덕종어보’가 2015년 3월 미국에서 환수되자 문화재청은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나선화 청장은 언론기고를 통해 반환 협상 뒷얘기까지 전하며 치적을 자화자찬했다. 그랬던 덕종어보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죽은 아버지 덕종(1438∼1457)을 기려 1471년 제작한 원품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도난당한 후 재제작된 근대기 신품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부터 연초 이를 보고 받고도 쉬쉬해 ‘짝퉁을 전시한다’는 오명을 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18일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어보’ 특별전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덕종어보 모조품 논란과 관련해 장시간 해명했다. 김 관장은 “지금 남아 있는 덕종어보는 일제강점기 재제작된 것”이라며 “하지만 순종이 재제작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고 종묘에서 위안제까지 지내며 봉안했다는 점에서 왕실이 공식 인정한 어보가 맞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덕종어보를 비롯해 올해 돌려받은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 2014년 환수한 조선·대한제국의 국새와 고종어보 등 9점 등을 일반에 첫 공개하는 자리였다.
덕종어보는 가치 판단에 따라 전시물품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치적은 대서특필, 실수는 감추기’식의 얌체 행정처리와 환수문화재 검증 부실로 땅에 떨어진 문화재청의 위신은 수습이 난망해 보인다.
문화재청은 덕종어보의 도난 사실이 1924년 매일신보 등 과거 신문에 났음에도 2016년 8월에야 제보를 통해 확인했다. 뒤늦게 부랴부랴 비파괴검사를 통해 문제의 덕종어보에 포함된 금속성분이 일제강점기 제작된 다른 어보와 유사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시점은 올 1월이다. 지난 2월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조선시대 어보 300여점을 일괄 보물로 지정하되 덕종어보는 제외키로 결론이 모아졌음에도 문화재청은 공표하지 않았다. 국새는 국가 문서에 사용되는 공식 인장,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 말 그대로 특별한 전시가 문화재청의 쉬쉬 행정으로 빛이 바랬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덕종어보’는 원품 아닌 재제작품… 문화재청 알고도 쉬쉬
입력 2017-08-18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