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필리핀 알론테에서 열린 한국과 태국의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준결승전. 김연경(29·상하이·사진)은 이날도 군계일학이었다.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21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김연경의 개인기에 의지한 한국은 조직력으로 똘똘 뭉친 태국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이날 경기는 한국 여자 배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한국 여자 배구는 그동안 김연경의 ‘원맨쇼’를 앞세워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 4강,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5위 등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한국이 김연경에게 의존하는 동안 약체였던 태국은 조직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또 어린 선수들이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을 쌓도록 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직후 세대교체를 단행한 태국은 신·구조화를 이뤄 아시아의 강호로 떠올랐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로 잡았던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문제는 9월 20∼24일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예선전이다. 한국은 태국, 베트남, 이란, 북한과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5개 팀 중 2개 팀이 2018년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거머쥔다.
이번 세계선수권 예선에서 한국은 태국과 1, 2위를 다툴 전망이다. 태국은 최근 여러 국제대회에서 20여명의 선수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상황에 따라 5∼6명을 한꺼번에 교체하며 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달 열린 그랑프리 세계대회와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엔트리 14명도 채우지 못했다. 더욱이 주전과 비주전의 기량 차이 때문에 주축 선수 6∼7명이 계속 뛰는 상황이 벌어졌다. 혹사 논란 속에 주전 센터 양효진(28·현대건설)이 결국 이번 아시아선수권 도중 허리 부상으로 쓰러졌다.
세계선수권 출전에만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고지에 오르려면 한국은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연경만 있으면 이기는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대한배구협회가 한국배구연맹(KOVO) 등과 머리를 맞대고 대표팀 운영과 선수들의 체력 안배, 세대교체 등 산적한 숙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야 할 때다.
한편 한국은 17일 열린 중국과의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3∼4위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 0 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김연경에만 의존… 한국 女배구 태국전 참패는 필연
입력 2017-08-17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