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평 강탈 ‘구로농지사건’ 전말… 박정희 주연, 국가기관 조연

입력 2017-08-17 18:29 수정 2017-08-17 21:19
1970년 4월 대통령비서실이 작성한 ‘서울시 구로동 대지분규 보고’ 문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5월 13일 결재하면서 오른쪽에 “법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정부 측이 패소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자필로 지시했다. 구로동 군용지 명예회복추진위원회 제공

국가가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구로 분배농지 조작 사건’은 1960∼70년대 청와대와 검찰 중앙정보부 등 여러 국가기관의 조작과 가혹행위가 확인된 과거사 사건이다. 당시 범죄자로 낙인찍혔던 이들은 40여년이 흘러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와 형사재판 재심을 거쳐 누명을 벗었다. 이어진 후손들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가 손해배상 시점 판단에 불복, 상소함으로써 마무리되지 못했다.

구로 분배농지 사건 피해자 후손들의 모임인 ‘구로동 군용지 명예회복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한동문(68)씨는 17일 “박정희 정권에 농지를 빼앗긴 것은 61년부터지만 아직 배상금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작하다 쫓겨난 이들의 후손은 150명을 넘는다. 소송은 여러 갈래로 이뤄졌고, 대법원에 계류된 것도 다수다. 한씨는 “소송비용 때문에 10분의 1만 가지급해 달라고 해도 국가가 막았다”고 말했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구로 분배농지 사건은 60년 5·16 쿠데타 이후 정부가 구로수출산업공단을 조성하기 위해 쫓아낸 농민들이 민사소송을 내 승소하자 국가가 불법행위를 통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다. 한밤중 농민들을 집단 체포한 뒤 좁은 방에 감금해 대소변도 못 보게 하거나 무릎을 꿇린 채 허벅지를 신발로 짓이기는 식의 가혹행위가 확인됐다. 구속영장 없이 만 5일간 구금된 사례, 벌거벗겨져 고문당한 사례도 조사됐다. 서울지검과 서대문구치소, 영등포경찰서, 뉴서울호텔 등 감금 장소는 다양했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구로 농지에 대한 민형사 소송의 진행 경과를 보고받고 법무부 장관에게 패소하지 말라는 친필 지시도 내렸다. 결과적으로 20만평의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빈민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사기범이란 누명 속에 살아갔다. 명예회복추진위 측은 “울분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까지 발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재심에 대한 재심까지 거쳐 가며 국가로부터 빼앗긴 재산과 명예를 되찾으려 소유권이전등기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백모씨 등 291명이 제기한 한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은 소송가액만 1100억원을 넘어 단일사건으로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2014년 2월 정부가 65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들에게 실제적 배상이 언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가의 과거 불법 행위와 별개로 구로 농지의 개발 후 지가 상승, 피해자 간 처분 행위 등을 두고 복잡한 쟁점이 있다는 게 법무부 판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법원에는 구로 농지 관련 사건이 다수 모여 통일적 처리가 논의 중”이라며 “최종 법리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었을 뿐 기계적으로 상고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정부에서 검찰은 민사소송 제기자 가운데 가짜 피해자가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대를 이어 보복하고 탄압받고 있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는 “유명한 과거사 사건에서만 선별적으로 항소나 상고를 포기한다면 정치적 행위”라며 “재심 필요 사건들에 대한 현황 파악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가현 이경원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