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죽음의 여행’이라는 이름의 사막에서 첫 핵폭탄 실험이 있었다. 상공 9㎞까지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실험책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힌두교 경전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탄식했다. “이제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됐다.” 현재 지구촌에는 약 2만 기의 핵탄두가 발사대기 상태에 놓여 있다. 전 인류의 목숨은 핵 단추 하나에 달려 있다.
인류는 또한 핵(원자력)발전으로 인한 피폭의 위험 아래 살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핵폭탄 투하 이후 소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 아래 핵발전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핵무기와 핵발전의 뿌리는 하나다. 원자로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라 본래 핵폭탄의 원료를 추출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핵은, 무기든 발전이든 평화와 같이 갈 수 없다.
핵은 기독교 신앙과도 양립할 수 없다. 그것은 일본의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의 말처럼 절대로 지구 위에서 태워서는 안 되는 ‘하늘의 불’이다. 밤하늘에 ‘불(별)’이 빛나고 있다.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생명이 살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우주의 역동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방사능이 식은 후에야 비로소 생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생명이 있는 세계에서 핵이라는 불은 치명적이다. 그 치명적 상황에 우리는 노출돼 있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바둥거린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는 수소(원자번호 1번)이고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는 우라늄(원자번호 92번)이다. 하나님은 신비한 우주의 생명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인간은 이중 가장 무거운 원소로부터 플루토늄이라는 물질을 추출했다. 그걸 가지고 폭탄을 만들었다. 플루토늄은 신이 창조한 물질이 아니다. 그걸로 인간은 신처럼 세상을 다스리려 한다. 핵은 성서적으로 ‘현대판 선악과 사건’과 같다.
아담이 신의 얼굴을 피해 나무 사이에 숨었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맘대로 먹어도 좋으나 동산 한가운데 있는 선악과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선악과는 모든 자유가 주어진 인간이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어떤 경계선과 같은 것이었다. 뱀의 유혹이 무엇이었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세기 3:5) 유혹의 핵심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려는 욕망이다.
오늘날 핵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다. 핵 위기의 본질은 인간의 위기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종(種)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하지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라고.
아담은 에덴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알고 부끄러워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 때 하나님이 물으신다. “아담아(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성서 전체를 통틀어 신이 인간에게 던진 최초의 질문이다. 어느 나무 뒤에 숨었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이 세계 안에서 신이 아니라 피조물의 하나로 겸손히 살아가야 할 인간의 본래 자리가 어디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 핵을 가지고 마치 신이나 되는 것처럼 세상을 지배하려드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를 향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질문이자 절규인 것이다.
“사람아, 두로의 통치자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말하기를 너는 네가 신이라고 하고 네가 바다 한가운데 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지만, 그래서, 네가 마음속으로 신이라도 된 듯이 우쭐대지만,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에스겔 28:2)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바이블시론-장윤재] 핵과 평화 사이에서
입력 2017-08-17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