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덕철] 40년된 건강보험제도의 과제

입력 2017-08-17 18:07

올해는 1977년 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시간 내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달성했다. 다만 너무 빠르게 달려온 탓에 보완이 필요한 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여전히 낮은 편이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보장 범위가 좁아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병원비 부담은 과중한 편에 속한다. 국민의료비 중 가계 직접부담 비율은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9.6%의 배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즉 질병에 걸렸을 때 고액 의료비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9일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병원비가 국민 생활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현실, 특히 큰 병에 걸렸을 때 의료비 부담이 가계 파탄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개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됐던 비급여 의료비를 없애려고 한다.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가 아니라 의학적 비급여는 완전히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뜻이다. 자가공명영상(MRI), 초음파 등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는 모두 급여화하고 다소 비용 효과성이 낮은 항목도 예비급여 등을 통해 건강보험의 틀 안으로 들여올 계획이다. 향후 세부 방안은 학계·단체 및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논의 등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정밀하게 설계해 나갈 예정이다.

또 고액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이중, 삼중의 보호장치를 마련할 예정이다. 우선 어르신을 위한 치매검사와 진료비용이 대폭 낮아진다. 각종 치매검사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증 치매환자의 경우 환자 본인이 내야 하는 비용을 전체 의료비의 1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틀니와 치과 임플란트에 대한 본인부담 비용도 50%에서 30%로 대폭 완화된다. 그리고 15세 이하 아동의 입원진료비 부담은 기존 10∼20%에서 5% 수준으로 대폭 낮아진다. 여성에게는 부인과 초음파검사와 소득별로 차등 지원해 온 난임시술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아울러 의료비로 인해 경제적 위기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본인부담상한제를 대폭 개선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소득 하위 50%에 속하는 대상자의 본인부담상한액을 연소득 10%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다. 이로 인해 2018년부터 5년간 약 335만명이 추가로 개선된 본인부담상한제 혜택을 받게 되며, 현재 기준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받는 대상자도 연간 4만∼50만원의 추가적인 의료비 지원을 받게 된다.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간 연계 대책도 마련해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받은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중복지급과 실손보험사의 반사효과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적극 모색할 계획이다.

또한 고액 의료비 발생 대비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안정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즉 4대 중증질환에 지원하던 것을 모든 질환을 대상으로 연간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대책으로 1인당 평균 의료비는 약 18% 감소하고, 비급여 부담도 64% 감소해 국민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2022년까지 필수 의료서비스에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역대 최고 수준인 30조60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된다. 이 같은 재원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정부는 지출 효율화 방안도 함께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꼭 필요한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의료를 이용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의료진, 그리고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