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일 터지자 부랴부랴 검사… 뒷북 친 정부

입력 2017-08-17 05:02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살충제 계란’ 사태 관련 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제도 허점 때문에 ‘살충제 계란’ 파동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닭에 진드기가 많아져 살충제를 사용하는 농가가 많아진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다 16일까지 확인된 6곳의 농가 중 5곳은 정부가 공인한 친환경 인증 농가라는 점에서 인증 관리제도에 ‘구멍’이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9월 농장 60곳의 표본을 추출해 식용가축에 사용을 금지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 함유 여부를 검사했다. 당시 피프로닐이 검출된 곳은 전혀 없었다. 올해 3월에도 전체 친환경 인증 농가 780곳 가운데 681곳을 현장 점검했지만, 피프로닐 검출 보고는 없었다. 지난 4∼5월 157곳의 산란계 농장에서 시중에 유통 중인 친환경 계란 제품을 검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조사 시점이 봄이나 가을이었다. 살충제 사용량이 많은 여름철 조사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0일 네덜란드에서 피프로닐 함유 계란이 적발된 뒤 문제가 되자 한국도 부랴부랴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조사에 나서자마자 피프로닐 함유 계란이 경기도 남양주의 한 농장에서 확인됐다. 한 곳으로 그치지 않고 16일에도 추가로 검출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선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의원들의 질책을 받았다. 류 처장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산 닭고기는 문제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었다. 야당 의원들은 류 처장이 당시 유럽의 살충제 계란을 언급하면서 “국내산 계란과 닭고기는 모니터링했는데 피프로닐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 발언의 진위 여부를 캐물었다. 류 처장은 “모니터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하다가 추궁이 이어지자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여름철을 앞두고 검사나 예방 조치를 강화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농식품부 관리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피프로닐이 검출됐거나 비펜트린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한 6곳의 산란계 농장 중 5곳이 농식품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농장이라는 점도 논란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살충제가 포함된 항생제를 쓰면 안 된다. 그런데도 5곳은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 혜택도 누렸다. 정부는 이들 농가가 어떻게 친환경 인증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해당 농가가 고의성이 있다고 판명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며 “향후 고발 등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닭고기는 문제없다’는 정부 발표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부 산란계는 육계로도 유통되고 있다. 육계는 산란계와 달리 전수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닭고기가 아닌 가공식품에 첨가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조금이라도 들어갔을 개연성이 있는 것은 다 조사하고 위험성 여부와 상관없이 (산란계가) 들어간 식품은 전량 폐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살충제 종류가 다양한데 관련 기관의 사용법 교육 등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농가들은 적정 사용량 같은 정보·지식이 없어 사용이 허가된 살충제라도 과다하게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란계 농장의 살충제 사용과 관련한 방역 당국 교육은 부정기적이다. 특정 제품을 홍보할 수 없다 보니 수의사나 유관단체 등에 개별적으로 약제 홍보를 하는 실정이다. 농식품부는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지자 뒤늦게 농가를 대상으로 닭 살충제와 관련한 교육에 나서기로 했지만 ‘뒷북 행정’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한편 농식품부는 “전수조사를 마친 뒤에 이상이 없다고 판명된 제품의 경우 유통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정건희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