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이후 10년 만에 재추진하는 ‘재정개혁 2.0’ 대상에 성역(聖域)은 없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입장이다. 기재부가 검토 중인 구조조정 대상 사업의 예산 총액은 100조원을 상회할 정도로 크다. 제대로 이뤄질 경우 공약재원 조달 등 재정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그러나 실세 장관이 있는 부처와 관련 업계,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당사자의 반발을 이겨내고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재정지출의 질적 구조조정 추진과 함께 각 부처에 실질적인 권한을 주는 등 예산 편성 구조 개혁도 병행할 방침이다.
쌀 직불금제도의 비효율성은 기획재정부는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일정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해 지출되는 2조9000억원의 농업 직불금 중 쌀 직불금이 2조3000억원에 달해 쌀 과잉생산을 부추기고 있다. 영세농민을 지원하겠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경작면적 상위 10% 농가가 쌀 직불금의 절반가량을 가져가고 있고, 하위 40% 농가가 수령하는 직불금 비중은 고작 10%에 그친다. 기재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하는 대신 농가소득안정을 위한 농업수입보험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농민단체는 오히려 쌀 직불금 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16일 “진보 정부에서 농심(農心)을 거스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기재부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올린 사업들은 공통적으로 쌀 직불금처럼 규모가 크고 그만큼 관련 이해당사자가 많다. 당장 매달 최대 43만원까지 지급되는 어린이집 보육 바우처를 없애고 현금급여로 통합하는 방안은 정부 지출 효율성은 제고될 수 있지만 맞벌이 부부 등 여론은 반대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복권기금 배분제도를 개선해 보완하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지자체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로또 수익금의 35%를 지자체 등에 의무적으로 떼어주는 것은 로또 발행당시 지자체 복권을 폐지한 보상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장병들이 군 병원을 기피하고 민간병원을 이용하면서 군 병원 이용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연간 2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부당청구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시스템 통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방부와 보건복지부, 관련 공공기관은 현 체계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정의 질적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는 김동연 부총리가 과연 이를 관철할 뚝심을 보일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기재부 핵심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재정에 관한 만큼은 자신이 중심을 잡고 추진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기재부는 노무현정부 당시 진행됐던 ‘재정개혁 프로젝트’를 보완·강화하는 방식으로 예산편성 구조 개혁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총액배분자율편성(톱-다운·Top-down) 제도 강화가 초점이다. 이 제도는 기재부가 총액한도를 설정해 주면 각 부처가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톱-다운 제도는 그동안 실효성 논란에 시달려 왔다. 애초 취지와 달리 총액한도는 기재부 예산실과 국회 논의과정에서 변동되는 경우가 많았고, 각 부처에 할당된 권한은 그만큼 축소됐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재부는 매년 재정전략회의에서 결정된 부처별 총액한도를 쉽게 바꿀 수 없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재부는 5년 단위로 수립되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의 실효성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매년 예산총액한도를 설정할 때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수립한 5년 단위 국가예산 총량을 기준으로 삼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산편성 때마다 정치적 논리에 휘말려 총액한도가 들쭉날쭉 변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세종=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
‘재정개혁 2.0’ 예산 구조조정 시동… 대상 사업 총액 100조
입력 2017-08-16 19:22 수정 2017-08-16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