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의 53번째 책 ‘광야와 도시’(태학사)엔 ‘건축가가 본 기독교 미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임 교수는 특정한 공간의 의미를 탐색하고, 그 결과를 끊임없이 책으로 펴내며 대중과 소통해 왔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성경 속 광야와 도시 그림으로 향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임 교수의 작업실을 찾았다. 1만권 넘는 책이 항목별로 나뉘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임 교수는 “광야와 도시라는 공간을 함께 보는 것이 기독교 미술은 물론 기독교 정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집필동기를 설명했다. 책 전반부에서 그는 자신만의 신앙 프리즘을 통해 광야와 도시의 의미를 풀어낸다. 얼핏 보면 신학 서적처럼 보일 정도다.
광야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그리고 구원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인류가 구원받기 위해선 탐욕을 없애고 원죄를 씻어야 하는데 풍요로운 곳에선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광야로 보내 탐심을 버리고 신앙을 회복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도시는 인간의 죄성이 극대화된 공간이다. 그는 기독교 미술에서 도시에 대한 그림은 세 경향으로 나뉜다고 했다. 예수의 공생애 복음 활동을 그린 그림처럼 대체로 도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경우와 이상향, 또는 타락한 곳으로 그린 것이다. 그는 “세속 권력자를 중심으로 인간들이 자기만의 나라를 만들어 하나님께 대적하다 심판을 받고 불살라지는 장면 등 타락한 곳으로 표현된 그림이 많다”고 설명했다.
도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는 순간 예배로 충만해진 영성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지 않느냐”며 “현대인들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신앙적으로 어떤 곳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에는 기독교 미술작품 69점이 실렸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미술책의 그림 20만장 중 건축 관련 그림 1만2000장을 추리고, 그중 도시와 광야를 담은 작품을 고르고 스캔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조반니 벨리니 등 유명화가뿐 아니라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마르텐 반 헤엠스케르크 등 익숙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임 교수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볼 때와 달리 그림의 배경이라는 공간에 주목하면 좀 더 풍요롭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40대에 개인적인 시련을 겪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왜 인간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다 하나님을 만났다. 교회에 등록은 안 했지만 매주 예배를 드린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마다 건축학을 연구하는 관점을 접목하며 자기만의 신앙관을 다졌다. 유럽, 특히 프랑스 사회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드러낸 기독교 사상가 자크 엘륄을 좋아한다. 이번 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엘륄의 책을 많이 읽었다. 임 교수는 “한국에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고유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현실과 접목해 나가는 작업이 약하다”며 “성경의 본질은 지키되, 자기 직업과 관련해 성경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 개신교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저자와의 만남-‘광야와 도시’ 임석재 교수] “성경 속 광야와 도시에서 기독교의 의미 찾아요”
입력 2017-08-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