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골적 협박에도 대북 결기 빠진 광복절 경축사

입력 2017-08-15 17:44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남북관계 주도적 역할론을 다시 강조했다. 북한에는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제재와 압박을 높이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쉬운 일부터 하자”며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협력 재개를 제안했다. 지난달 6일 발표한 베를린선언의 기본 구상을 재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주도적 역할’과 ‘평화적 해결’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우리의 미래를 다른 나라가 결정토록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전쟁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단호하게 원칙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연설에 좀처럼 공감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막겠다고 했으나 어떻게 평화를 지키겠다는 구체적인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협박은 광복절에도 계속됐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전략군사령부로부터 괌 포위사격 계획을 보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우리 군부대와 국가 핵심시설을 스커드·노동 미사일로 타격하겠다는 계획이 그려진 지도가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전략군사령부는 800기가 넘는 스커드·노동·무수단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섬뜩한 사진이다. ‘지금은 미국을 상대 중인데, 너희는 언제든 공격할 수 있으니 가만히 있어라’는 노골적인 협박장이다. 지금까지 불바다 운운하며 말만 앞세웠던 북한은 드디어 남한 내 타격지점을 표시한 미사일 운용부대 지도를 공개하며 협박의 강도를 높였다. 미국은 괌에 미사일이 날아올 가능성만으로도 전쟁을 준비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이런 협박을 당하면서도 올림픽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당장의 위협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 우리나라 전역이 북한 핵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었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도발에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의지를 나라 안팎에 천명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미국이 해결할 것이므로 우리는 남북관계 복원에 주력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어느 나라도 그런 식의 이기적인 역할분담에 동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