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반성장위 “평가기준 강화·인증제 도입”… ‘패싱’ 위기감에 몸부림

입력 2017-08-15 05:00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과정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존재감을 잃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체질 개선에 나선다.

동반성장위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해 설립된 민간 자율기구지만 정부가 출범을 주도해 ‘관변단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정부 때는 ‘창조경제’에 밀려 조명 받지 못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이 재계와 가진 ‘호프미팅’과 을지로위원회 그늘에 가려졌다.

동반성장위는 내년부터 동반성장지수 평가를 받는 기업 수를 늘리고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동반성장지수는 동반성장위가 매년 대기업의 동반성장 수준을 평가·계량화한 수치다. 평가 등급은 기존 ‘최우수’ ‘우수’ ‘양호’ ‘보통’ 4단계에 올해 최하위 등급인 ‘미흡’이 추가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14일 “올해 성장지수에 ‘미흡’ 등급을 신설했더니 평가대상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평가기업 수를 늘리고 동반성장 실적평가 등 여러 기준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별다른 동반성장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기업들도 손쉽게 ‘양호’ 등급 이상을 받을 만큼 그동안의 동반성장지수 평가방식은 온정적이었다”며 “내년부터 옥석을 명확하게 가리는 평가체계를 적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위는 동반성장인증제(가칭)를 도입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인증제는 대·중소기업이 협력한 모범 제품을 선정해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골자다. 인증 기준으로는 ‘납품단가 지급 원활’ ‘소비자 안전 보장’ ‘판매 성과 공유’ 등이 꼽힌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기구의 인증에 세제혜택을 제공할지는 의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액 추가공제 등 세제혜택은 세법개정안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며 “동반성장위 역량이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대신 중소기업적합업종 사업에 쏟는 힘은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적합업종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영세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민생형’ 품목을 직접 관리하는 방안이 정부·국회에서 유력 논의되고 있어서다. 동반성장위는 비교적 사업이 안정된 ‘민생형 외’ 품목만 맡게 돼 역할과 부담이 줄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새 위원장도 선출할 계획이다. 동반성장위는 안충영 위원장의 임기 만료일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임 위원장을 뽑지 못했다.

동반성장위가 흔들리는 조직 기반을 다잡고 정체성을 재정립하지 못하면 이번 정책들도 모두 공수표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기업은 ‘규제기관’, 중소상인은 ‘친대기업 기관’이라며 동반성장위를 꺼리는 분위기도 극복해야 한다. 2019년부터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매년 받아온 지원금 20억원도 끊길 예정이라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신임 위원장 선출을 계기로 위원회의 비전을 정비할 예정”이라며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면 정체성이나 예산 문제도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