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윤성민] 일선 경찰 자괴감만 키운 ‘땜질식 봉합’

입력 2017-08-14 17:55 수정 2017-08-14 21:31

경찰 제복을 입은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차렷, 경례!” 구령에 맞춰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이튿날인 14일, 일선 경찰들의 심정은 여전히 참담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과장은 “장관에 등 떠밀려 사과를 하는 모습이 방송에 생중계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현직 경찰관 1만2000여명이 가입한 SNS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참담하다. 정말 참담하다. 내 청춘을 이런 누더기 걸레 같은 조직에 바쳤다니” “망신은 현장이, 싸움은 무뇌부(뇌가 없는 수뇌부)가”와 같은 글로 가득했다.

일선 경찰의 자괴감이 이처럼 큰 것은 이 청장과 강 교장의 낯 뜨거운 폭로전이 수사권 조정 논의가 무르익던 시점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을 향한 바람은 경찰 지휘부보다 일선 경찰들에게 더 크다. 수사권을 가질 때,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했던 자신들의 자존심이 회복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장 경찰들은 수사권 조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수뇌부의 집안싸움으로 물 건너가는 건 아닐지 염려하고 있다.

문제는 장관과 경찰 수뇌부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이번 사건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 청장이 지난해 11월 강 교장(당시 광주지방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표현한 광주경찰청 페이스북 게시물 삭제를 지시했는지 여부다. 여전히 이 청장과 강 교장의 주장이 엇갈린다. 김 장관은 13일 두 사람에게 “상대방에 대한 비방·반론을 중지하라”고만 했지,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밝혀낼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한 경찰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과는 사과고, 책임은 책임입니다”라고 썼다. 정확한 지적이다. 13일 경찰 지휘부는 사과는 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이 청장이 정권의 하수인이었는지, 아니면 강 교장이 거짓말쟁이였는지 곧 밝혀낼 것이다. 그땐 둘 중 한 명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일선 경찰들의 자괴감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윤성민 사회부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