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현상금 5억인데… 신고한 농민 한푼도 못 받아

입력 2017-08-14 17:55
“머리맡에 소주병이 보이더라고. 노숙자인 줄 알았어.”

2014년 7월 22일 전남 순천시 학구리의 한 매실밭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처음 발견해 신고한 농민 박모(80)씨는 몰려든 취재진에게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신이) 겨울용 점퍼에 긴 바지 차림인데다 주변에 소주병과 러닝셔츠, 양말이 있었지. 누가 봐도 노숙자였어.” 박씨는 순천경찰서에 신고하면서도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자’라고 했다.

당시 유씨에게는 역대 최고액인 5억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검·경은 물론 군부대까지 추적에 동원됐지만 그의 종적을 찾지 못할 때였다. 비록 시신이었지만 박씨의 신고로 유씨 소재가 확인된 만큼 5억원을 지급해야 하는지가 논란이 됐다. 경찰은 심의위원회를 연 끝에 현상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범죄신고자 보상 규칙 등이 규정한 ‘신고자’에 박씨가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유영일 판사는 박씨가 낸 신고보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유 판사는 “‘유병언을 신고하는 행위’는 그 신고 대상이 유씨라는 걸 신고자가 인지한 상태에서 제보해야 성립한다”며 “박씨처럼 단순 변사체 발견 신고를 한 것은 유씨를 신고한 행위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을 신고했던 주부 강모씨는 경찰이 신씨를 연행 도중 놓쳤지만 소송을 통해 현상금 5000만원을 받았다. 대법원은 당시 “경찰이 신씨 신원 확인을 위해 파출소까지 데려갔으므로 현상광고에서 내건 ‘제보로 검거됐을 때’라는 조건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