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23일 밤 10시30분쯤. 대전광역시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블라인드를 올리던 20대 여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창문 밖에서 벌떼가 날아다니듯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소음의 정체는 몰래카메라(몰카)를 찍던 회전익 드론이었다. 이 여성은 “창밖의 드론을 보니 무서웠다. 범인이 빨리 잡히기를 바란다”며 SNS에 비슷한 피해를 당하면 신고하자는 글을 올렸다. 이 여성은 20분 넘게 ‘드론 몰카’가 촬영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인근 건물 거주자들을 용의선상에 두고 수사를 펴고 있다.
#장면 2.
지난달 27일 밤 11시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원룸촌.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헤집고 떠오른 소형 드론이 원룸의 2층 창가에서 일정한 높이로 한참동안 머물다가 사라졌다. 경찰은 인근 10여곳의 CCTV를 분석하고 드론 판매업소 등을 탐문해 40대 자영업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현재 외국에 체류 중인 용의자는 “취미활동으로 드론 비행연습을 했을 뿐 몰카와는 상관없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결정적 물증을 확인하지 못해 이 남성이 귀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은 몰카의 증거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공항 주변 반경 9.3㎞이내 관제권에서는 허가받은 비행물체만 띄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항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몰래카메라가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을 띄워 집안 내부를 촬영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전국적으로 드론 몰카에 대한 경찰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인터넷에는 드론 몰카로 촬영한 영상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06년 517건에서 2016년 5185건으로 10년 사이 10배 이상 급증했다. 성폭력범죄 중 몰카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3.6%에서 2016년 24.9%로 7배 가까이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통신위도 14일부터 10일간 인권침해 영상물의 효율적 차단과 유통방지를 위한 집중 단속에 나섰다. 방통위는 몰카와 보복성 성 영상물 등 인권침해가 급증함에 따라 유포자와 사업자를 형사고발하고 63개 웹하드, 주요 포털사업자와 협력해 삭제·차단 등 신속한 조치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본적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몰카 관련 현행 법적 규제는 카메라로 타인의 신체를 찍어 배포·판매하는 행위만 처벌하도록 돼 있다. 몰카 촬영에 활용되는 특수 촬영장비의 음성적 판매 등은 법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허가받은 사람에게만 소형·특수카메라를 판매하도록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광주경찰청 박종열 여성청소년 과장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진화하는 몰카로 인한 국민적 불안감을 덜어줄 법안이 서둘러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유성열 기자 swja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몰카의 진화… 드론 띄워 집안 내부 촬영
입력 2017-08-1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