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경찰에 수사권 맡겨도 되겠나

입력 2017-08-14 17:35
이철성 경찰청장이 14일 일선 경찰관들에게 “동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 송구하다”고 사과서한을 보냈다. 전날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 등 수뇌부와 함께 대국민사과를 한 뒤 후속조치로 경찰 조직을 추스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비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잘잘못을 떠나 경찰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당사자가 경찰개혁을 운운하며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찰 수뇌부의 사과와 반성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촛불집회 때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라고 표현한 광주지방경찰청의 SNS 게시글 삭제를 둘러싼 이 청장과 강 교장의 진실공방에 많은 국민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정권교체기 권력기관의 내부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안팎으로 비난이 쏟아졌지만 수뇌부의 말싸움은 검찰 수사가 시작돼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휘권을 가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불미스러운 일이 되풀이될 경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자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장관의 구령에 맞춰 경찰청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인터넷에는 조롱이 쏟아졌다. 초등학생들이 서로 싸우다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억지로 화해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경찰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아가 권력 주변을 기웃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나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서민의 눈물을 닦는 본래의 역할을 되찾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며 경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 청장이 시위 중 물대포에 숨진 농민 백남기씨 사건을 사죄하고 경찰개혁위원회를 가동시켰지만 스스로를 개혁하겠다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출세를 앞두고 내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시대 인물이 득세하는 조직에 수사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가 뒷감당을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경찰, 인권경찰을 앞세운 구호는 이제 필요 없다. 경찰은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