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영화 선교사’ 이성수 감독, 서울∼도쿄 2000㎞ 용서의 자전거 여행

입력 2017-08-15 00:04
이성수 감독(오른쪽)이 6월 29일 도쿄 성서그리스도교회에서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성수 감독 제공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단어가 아닙니다. 무지한 자와 아는 자를 구분 짓는 단어입니다. 죄에 대해 아는 자가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이번 여정은 그 모습을 담기 위한 걸음입니다.”

대한민국 1호 영화선교사 이성수(61) 감독은 영화 ‘뷰티풀 차일드(Beautiful child)’ 이후 4년여 만에 메가폰을 잡게 된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최근 방문한 서울 관악구 스타트리 영화사 사무실 벽엔 큼지막한 일본 지도가 붙어 있었다. 이 감독은 검지로 시모노세키항∼도쿄 구간을 그어 보이며 “이 길이 용서의 길로 다시 태어나길 소망한다”고 했다.

그는 다음 달 18일부터 한국인 6명 일본인 6명과 함께 34일을 서울∼도쿄 약 2000㎞를 자전거로 종주한다. 대장정의 이름은 ‘용서를 위한 여행’. 이 감독은 “일본은 근대화와 군국주의화 과정에서 도쿄부터 시모노세키까지 철도를 놓고, 부산으로 뱃길을 열고 다시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서울 평양 신의주 심양 하얼빈까지 전쟁 물자와 병력 수송을 위한 철도를 세웠다”며 “‘죽음의 길’이었던 이곳을 생명으로 불어넣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낼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 ‘독도 영유권 분쟁’ 등 민감한 문제들이 놓여 있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지금 이 감독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일본을 용서할 대표권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을 교회는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뷰티풀 차일드’를 통해 기독교인에게 학대당한 캐나다 원주민들을 보듬는 한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때 ‘용서’란 단어를 마음에 처음 새긴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선 유독 그 대상이 일본이 되면 관대함이 사라져 버립니다. 일본을 손가락질하면 공감을 얻기는 쉽겠지만 비난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국내에선 서울역∼경기도 화성 제암리교회 67㎞를 시작으로 천안 대전 구미 대구 밀양 부산까지 매일 60∼100㎞를 달린다. 일부 자전거 도로 구간은 과거 일본이 설치했던 철길이 변해 있다. 그 일제의 흔적 위로 페달을 밟는 셈이다. 자전거 뒤에는 양국 국기와 십자가 깃발이 펄럭일 예정이다. 한국인 참가자는 일장기를, 일본인은 태극기를 단다.

부산서 배로 이동해 시모노세키항에서 도쿄로 향하는 구간은 국내 여정의 두 배다. 이 감독은 “후지에서 하코네로 갈 땐 10㎞ 연속 경사로가 이어지는 ‘마의 구간’”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가슴 아픈 역사 가운데 마음의 짐을 진 자들이 그 고통을 함께 감내해가는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정 중엔 세 차례 의미 있는 예배도 진행된다. 제암리, 오사카, 도쿄에서 드려질 예배에는 양국 목회자 6명이 ‘용서’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에선 김인중(안산동산교회 원로) 명성훈(순복음성시교회) 정근두(울산교회) 목사가, 일본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가해 할머니들께 사죄했던 오야마 레이지(성서그리스도교회 원로) 목사 등 3명의 목회자가 나선다.

대장정 참가자는 19일까지 모집한다 (02-585-5821, fishtree.kr).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