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매각 협상 두 달 가까이 공전

입력 2017-08-14 05:00

SK하이닉스가 뛰어든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 절차가 표류하고 있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후 두 달 가까이 협상이 공전하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표면적으로는 협상 과정이 원점으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 매각하기 위한 도시바의 ‘언론플레이’로 협상이 지연되는 것이라는 시각이 아직까지는 우세하다.

13일 NHK 등 외신에 따르면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매각과 관련해 “한·미·일 연합과 합의를 이루기 위한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다른 곳과도 병행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는 SK하이닉스도 포함돼 있다. 쓰나카와 사장은 한·미·일 연합 이외 협상 대상자로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대만 폭스콘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도시바가 WD·폭스콘과도 협상 중이라는 얘기는 지난달부터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왔으나 도시바 측은 이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지난 6월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때만 해도 순조로울 것 같았던 매각 작업이 벽에 부닥친 것은 SK하이닉스가 전환사채로 자금 일부를 대겠다고 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환사채는 발행할 때는 회사채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바뀐다. 이에 일본 내부에서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에 관여하고, 도시바의 기술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 입김으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는 WD와 도시바 간 법적 다툼에 따른 리스크 분담 문제가 남아있다. 국제중재재판소가 매각 반대를 주장하는 WD의 손을 들어줄 경우 매각 절차 자체가 백지화될 수도 있다.

SK하이닉스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지분 취득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지분 인수가 불가능할 경우 SK하이닉스가 조 단위 인수전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쓰나카와 사장은 회견에서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독점금지법 심사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WD의 경우 인수 자금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폭스콘에 대해서는 중화권으로 반도체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협상에서 시간에 쫓기는 쪽은 도시바”라며 “조만간 매각의 방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글=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