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쾅 내려치며 ‘이거 영장 신청할 거다. 잘 생각해라’고 윽박지르는 경찰이 아직도 있더라고요.” “피의자 사생활을 비아냥거리며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수사관도 있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최근 소속 변호사 1만2000여명을 상대로 청취한 피의자 인권 침해 사례의 일부다. 서울변회는 형사사건 처리의 낡은 관행을 개선해 달라는 변호사들의 요구에 따라 최근 ‘피의자 인권·변호인 변론권 보장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TF팀은 지난 8일 첫 회의를 열고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목격한 문제점들을 취합했다. 사례를 요약한 자료집 분량만 A4용지 50장에 달했다.
변호사들은 “반인권·강압적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한 변호사는 “나이가 많은 피의자가 ‘귀가 어두워 잘 안 들린다’고 하자 수사관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이후에는 초등학생이 글 읽는 말투로 질문을 했다”며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수사관이 사실을 묻는 게 아니라 ‘지금 생각해보니 나쁜 것 같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마치 피의자가 자백하는 것처럼 조서에 기록하는 경우를 봤다”며 “자백을 유도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들의 목소리는 각 경찰서, 부서별 분위기를 전달할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서 ○○계는 변호인이 들어가자 조사 중인 피의자 옆에 앉지 못하게 했다’ ‘○○서 ○○과는 특별한 사정없이 피의자를 오래 대기시키는 경우가 잦다’는 등 세세한 사례가 제시됐다. “이런 내용을 해당 수사기관에 직접 통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변회는 지난 6월과 7월 서울중앙지검 및 서울지방경찰청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정례 간담회를 갖기로 했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일선 변호사들의 의견을 추가 취합하고 개선 요구 사항을 정리해 이들 기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경 양 기관도 문재인정부의 인권 강화 기조를 타고 나란히 ‘인권을 돕는 수사’를 천명한 상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8일 대검찰청 월례간부회의에서 “변호인 조력권 보장 방안을 연구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변호사협회 등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형사사법에 종사하는 법원과 변호인, 경찰 등 유관기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지난 3일 전국 경찰지도부 회의에서 “시민사회와 일반 국민 의견이 치안 정책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양민철 이경원 기자listen@kmib.co.kr
수사관 ‘反인권 발언’ 이제 그만… 변호사들 팔 걷었다
입력 2017-08-1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