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계와 여론의 격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 임명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된 ‘과(過)’는 인정하되 과학기술과 IT 발전에 기여한 공(功)은 이해해달라는 논리를 폈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의 주연으로서 도덕적 치명상을 입었고, 업무 파트너인 과학기술계로부터 비토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박 본부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청와대의 오판이 거듭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박 본부장은 황우석 교수 사건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고 과학기술보좌관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박 본부장은 노무현정부 당시 과학기술 정책 구상을 주도한 주역 중 한 명”이라며 “당시와 직책도 같고 더 나은 자리도 아니다. 임명 취지에 대해 널리 이해를 구한다”고 강조했다. 대체할 인력이 마땅치 않고, 영전을 한 것도 아니며, 노무현정부 정책을 이어받은 문재인정부 구상에 기여했다는 의미다.
또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일하며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예산 문제를 다뤄본 경험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 신설된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국가 R&D사업 예산 20조원의 심의·조정 권한을 행사하고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과학기술 정책 집행 컨트롤타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일반 학자가 본부장으로 오면 기재부 등 공무원을 상대로 뭘 할 수가 없다”며 “박 본부장이 당시 업무를 해봤기 때문에 잘할 것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청와대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젊은 과학자 모임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 168명과 과학기술자 60명은 지난 9일 긴급 성명을 내고 “박 본부장의 이름은 과학기술인에게 악몽”이라며 “노무현정부 시절 스타 과학자 육성을 중심으로 한 언론플레이로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 했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마자 전공도 아닌 4차 산업혁명 관련 저술로 다시 나타나 유행을 좇았다”고 비판했다.
박 본부장은 10일 “구국의 심정으로 나섰다”며 사퇴불가 입장을 밝혔다. 박 본부장은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 정책 간담회에 앞서 “황우석 사건 당시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매 맞는 것으로 대신했다”며 “과학기술 연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체계를 만들려는 꿈과 이상을 실현해보고 싶어 본부장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간담회를 마친 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간담회장 앞에서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연구노조 조합원들이 찾아와 박 본부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며 한때 몸싸움을 벌였다.
보수야당은 물론 정의당도 박 본부장 임명을 비판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박 본부장은 땀 흘리는 연구자를 위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준구 문동성 최예슬 기자 eyes@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功도 많다” 논리로… 靑, 궁색한 ‘박기영 구하기’
입력 2017-08-10 17:48 수정 2017-08-10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