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카드 흔드는 北에 핵폭탄급 ‘말 펀치’

입력 2017-08-10 05:05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북한을 경고하면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구사하자, 미 언론과 정가도 깜짝 놀랐다. ‘전 세계가 이전에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표현은 북한에 대한 핵 공격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어 9일에는 경고의 내용을 구체화했다. 트위터에 “지금 우리의 핵무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핵무기를 직접 언급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직설적으로 전달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이 힘(핵무기)을 쓸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여 실제로 군사적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케 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에 대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외교적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이해하는 언어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다. 북한은 안보리 결의를 북한의 자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미국의 극악한 범죄의 대가를 천백배로 결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자신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자부했으나, 북한의 반발로 무색해지자 대화보다 힘의 과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지난달 28일 작성한 내부 기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더해 북한은 30∼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미 정부가 추산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DIA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핵 무장은 사실상 완성됐거나, 완성 직전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있지만, 미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핵 위협 능력이 현실화되는 건 시간문제다.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보다 강한 메시지를 내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화염과 분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고 내놓은 발언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 중단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행사하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을 ICBM으로 보지 않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ICBM이냐, IRBM이냐’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 간에 이견이 불거지면서 안보리의 대북 제재 수위도 영향을 받았다.

미 정가에서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지나쳤다는 평가가 많다. 미 상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의 존 매케인 의원은 “위대한 지도자는 행동할 준비가 되기 전에 적을 협박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야당은 더욱 비판적이었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 의원은 성명을 내고 “북한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부주의한 수사는 미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전략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