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제 부덕의 소치” 울먹이며 “대통령에 부탁한 적 없다”

입력 2017-08-07 18:30 수정 2017-08-08 17:25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은 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미리 준비해온 노트를 약 6분간 읽으며 최후진술을 했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울먹이면서 “사익을 위해 대통령에게 부탁한 적은 결코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직접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하며 “삼성이 실체적 진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인정 여부는 국정농단 재판의 분수령이다.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가 무죄로 판단되면 그와 공여-수수자 관계로 얽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혐의에도 직간접 영향을 끼친다. 지난 5개월간 구속돼 있던 이 부회장은 출소해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다. 경영 일선 복귀도 가능해진다.

반대로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가 유죄로 판결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 등의 재판 결과도 유죄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은 장기간 수감생활을 감수해야 하며 경영 복귀도 요원해진다.

뇌물 vs 강요·공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양측은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막판까지 격론을 벌였다. 먼저 의견진술에 나선 박 특검은 “혐의가 명백하게 입증됐다”고 공언했다. 그는 “그룹 차원의 뇌물사건에서 가장 입증이 어려운 건 금품 전달과 총수의 가담 사실”이라며 “이 부회장 등은 약 300억원을 건네고 박 전 대통령과 독대 후 자금 지원을 한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증이 가장 까다로운 기초사실들이 전부 확인됐다는 것이다.

‘특검이 가공의 틀을 만들었다’ ‘이 부회장은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이 부회장 측 변론에도 일침을 가했다. 박 특검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디테일의 늪에 (재판부 등을) 빠지게 했다”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정유라씨 승마 지원 등은 최씨의 강요로 이뤄진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검의 법리적 논증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뇌물죄는 금품을 주고받은 사람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오가는 등 대가관계가 있다는 게 입증돼야만 성립한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이 정유라라는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부회장이 혼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며 금품 제공을 수락해 서로 대가관계가 이뤄졌다는 게 특검 주장”이라며 “너무 막연하다”고 했다. ‘세 사람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우를 범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부회장은 눈물까지 보이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평소 경영을 맡게 된다면 제대로 한번 해 보자. 존경받는 기업인이 돼 보자고 다짐했었다”며 “뜻을 펴보기도 전에 법정에 서게 되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지만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이게 모두 다 내 탓이라는 점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다 내 책임”이라면서도 국민연금을 경영권 승계에 동원하려 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너무 심한 오해다. 정말 억울하다”고 울먹이며 강조했다.

진실은 어느 쪽에

특검은 삼성 주장의 허구성을 살펴봐 달라고 재판부에 당부했다. 박 특검은 “최근 기업 사건에는 범행을 숨길 수단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공식보고체계에서 이 부회장이 빠졌다지만 고장난명(孤掌難鳴·한 손으로 소리를 낼 수는 없음)이란 주장이다.

삼성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 등을 유죄로 추단하는 사회 분위기가 참 힘들었다”며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글=양민철 이가현 기자,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