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시각장애인 돕기에 평생을 바쳐온 여류 수채화가의 ‘나눔의 삶’이 사후(死後)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은 2014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정희(사진) 전 화도감리교회 장로.
박 장로는 한글점자 ‘훈맹정음’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딸로 부친에 이어 점자도서관을 설립하고 중도실명자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평생 살아왔다. 6·25전쟁 중엔 피란 온 시댁식구 23명을 돌보며 아들, 딸, 조카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팍팍한 형편에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그녀는 예순을 넘어서야 비로소 수채화가로서의 꿈을 이뤘다. 인천 화도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수채화교실을 열고 이웃에게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선물했던 박 장로는 2014년 12월 별세했다.
박 장로가 하나님 품에 안긴 지 3년이 지났지만, 나누고 헌신하며 살아온 ‘수채화 같은 인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서 신앙공동체 ‘예예동산’을 운영하는 장녀 유명애 권사 등 유족들은 한섬재능나눔장학회 기금 마련을 위해 8월 한 달 간 서울 서초호민교회(신석 목사) 부설 호민아트갤러리에서 ‘박정희 할머니 수채화 기증전’을 열고 있다.
재능은 있으나 경제적 궁핍으로 레슨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어머니 작품 중 100점을 헌납, 지난 6월 1차로 기증전을 열어 1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유족들은 2차로 전시를 열고 1000만원의 장학금을 장학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섬재능나눔장학회는 춘천 한울섬김교회(노에녹 목사)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풀뿌리 장학회다. 매년 춘천에서 음악적 달란트가 있는 청소년들을 선발해 3년 동안 1인당 45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해외 및 국내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첫해 1기 장학생 두 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명의 학생들이 지원을 받았다.
박 장로와 ‘모녀 수채화가’로 활동해온 유 권사는 “어머니는 6·25전쟁 중 구호품으로 받은 크레파스를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그림을 그리러 다니셨다”며 “전쟁통에 어렵고 힘들었지만 어머니와 그림을 그리면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수채화가 박정희 장로 하늘나라로 떠난 지 3년… 따뜻한 나눔의 붓은 놓지 않았다
입력 2017-08-0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