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가 박정희 장로 하늘나라로 떠난 지 3년… 따뜻한 나눔의 붓은 놓지 않았다

입력 2017-08-08 00:03
한 관람객이 7일 서울 서초구 호민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정희 할머니 수채화 기증전’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호민아트갤러리 제공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시각장애인 돕기에 평생을 바쳐온 여류 수채화가의 ‘나눔의 삶’이 사후(死後)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은 2014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정희(사진) 전 화도감리교회 장로.

박 장로는 한글점자 ‘훈맹정음’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딸로 부친에 이어 점자도서관을 설립하고 중도실명자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평생 살아왔다. 6·25전쟁 중엔 피란 온 시댁식구 23명을 돌보며 아들, 딸, 조카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팍팍한 형편에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그녀는 예순을 넘어서야 비로소 수채화가로서의 꿈을 이뤘다. 인천 화도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수채화교실을 열고 이웃에게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선물했던 박 장로는 2014년 12월 별세했다.

박 장로가 하나님 품에 안긴 지 3년이 지났지만, 나누고 헌신하며 살아온 ‘수채화 같은 인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서 신앙공동체 ‘예예동산’을 운영하는 장녀 유명애 권사 등 유족들은 한섬재능나눔장학회 기금 마련을 위해 8월 한 달 간 서울 서초호민교회(신석 목사) 부설 호민아트갤러리에서 ‘박정희 할머니 수채화 기증전’을 열고 있다.

재능은 있으나 경제적 궁핍으로 레슨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어머니 작품 중 100점을 헌납, 지난 6월 1차로 기증전을 열어 1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유족들은 2차로 전시를 열고 1000만원의 장학금을 장학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섬재능나눔장학회는 춘천 한울섬김교회(노에녹 목사)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풀뿌리 장학회다. 매년 춘천에서 음악적 달란트가 있는 청소년들을 선발해 3년 동안 1인당 45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해외 및 국내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첫해 1기 장학생 두 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명의 학생들이 지원을 받았다.

박 장로와 ‘모녀 수채화가’로 활동해온 유 권사는 “어머니는 6·25전쟁 중 구호품으로 받은 크레파스를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그림을 그리러 다니셨다”며 “전쟁통에 어렵고 힘들었지만 어머니와 그림을 그리면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